낙타의 여정 - 백성민
고삐 쥔 손이 흔들릴 때마다 두려웠다
푸른 초원이
신기루라고 모두 손 사래질 할 때도
목숨 하나씩 담고 건너야 하는 고비사막
난생 처음 등에 맨 혹 하나 떼어
녹슬어 무딘 칼로 열십자 길을 낸다
사막의 모래폭풍은 잠시의 길마저 지워버리고
돌아나갈 길마저 잃어버린 이곳은 툰드라의 고원
어느 편협한 사상의 절름발이가
이 낯선 곳을 찾아올까만
바람은 태고의 몸짓으로 생명의 씨앗을 실어 나르고
단단한 가시로 잎을 틔운 천형의 그림자만
냉엄한 햇볕 아래 꿋꿋하다
전설로만 남은 65센티미터의 거대한 족적은
전설보다 긴 이야기일 뿐,
타클라마의 무덤은 생명을 위해 준비된
마지막 여행지다
*시집, 워킹 푸어, 고요아침
4-19호 혜미의 빈방 - 백성민
사내의 손길이 잃어버린 것을 찾는 듯 조급했다
은밀한 가랑이 사이로 숨어든 바람들이
멈칫거렸고
열차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천장 위 불빛이 바람도 없이 흔들렸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 사내의 모습이 잠시 전에 머물고 간
사내의 모습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맡에 놓인 만 원권 석 장
창문을 넘어온 눅눅한 빛들이
푸석푸석한 웃음들을 토해 놓는다.
크리넥스 몇 장으로 막아놓은 자궁 속에서
덜 마른 정액 냄새가 났다
빗길을 걸어온 어느 사내의 발소리가
19호실 앞에서 멈추어 선다.
# 백성민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1980년 <청담문학> 동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이등변 삼각변의 삶>, <죄를 짓는 것은 외로움입니다>, <워킹 푸어>가 있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시 편의점 - 김태완 (0) | 2018.07.18 |
---|---|
슬픈 육식 - 김창균 (0) | 2018.07.18 |
일어나 맨 처음 바라보는 쪽 - 박구경 (0) | 2018.07.18 |
꽃으로 돌아갈 길을 잃다 - 이태관 (0) | 2018.07.17 |
슬레이트지붕 파란, 그 집 - 황학주 (0) | 2018.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