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낙타의 여정 - 백성민

마루안 2018. 7. 18. 22:19

 

 

낙타의 여정 - 백성민

 

 

고삐 쥔 손이 흔들릴 때마다 두려웠다

푸른 초원이

신기루라고 모두 손 사래질 할 때도

목숨 하나씩 담고 건너야 하는 고비사막

난생 처음 등에 맨 혹 하나 떼어

녹슬어 무딘 칼로 열십자 길을 낸다

 

사막의 모래폭풍은 잠시의 길마저 지워버리고

돌아나갈 길마저 잃어버린 이곳은 툰드라의 고원

 

어느 편협한 사상의 절름발이가

이 낯선 곳을 찾아올까만

바람은 태고의 몸짓으로 생명의 씨앗을 실어 나르고

단단한 가시로 잎을 틔운 천형의 그림자만

냉엄한 햇볕 아래 꿋꿋하다

 

전설로만 남은 65센티미터의 거대한 족적은

전설보다 긴 이야기일 뿐,

타클라마의 무덤은 생명을 위해 준비된

마지막 여행지다

 

 

*시집, 워킹 푸어, 고요아침

 

 

 

 

 

 

4-19호 혜미의 빈방 - 백성민

 

 

사내의 손길이 잃어버린 것을 찾는 듯 조급했다

은밀한 가랑이 사이로 숨어든 바람들이

멈칫거렸고

열차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천장 위 불빛이 바람도 없이 흔들렸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 사내의 모습이 잠시 전에 머물고 간

사내의 모습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맡에 놓인 만 원권 석 장

창문을 넘어온 눅눅한 빛들이

푸석푸석한 웃음들을 토해 놓는다.

 

크리넥스 몇 장으로 막아놓은 자궁 속에서

덜 마른 정액 냄새가 났다

빗길을 걸어온 어느 사내의 발소리가

19호실 앞에서 멈추어 선다.

 

 

 

 

# 백성민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1980년 <청담문학> 동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이등변 삼각변의 삶>, <죄를 짓는 것은 외로움입니다>, <워킹 푸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