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하늘에 경계를 묻다 - 이형근

마루안 2018. 7. 19. 23:16



하늘에 경계를 묻다 - 이형근



장곶마루를 걷고 있다
공제선을 넘은 철새 떼가
하늘에서 뱃속을 찌그렸다


해무리 밭에 씨 뿌리고
달무리 밭에 씨 뿌리고
바람이 키득거렸을 것이다


나는 본시 잡초였다


벼 밭에 피가 잡초이고
피 밭에 벼가 잡초이듯


나는 본디 잡놈이었다


양기를 품었든 음기를 품었든
다 해와 달의 생기였을 것이다


이땅에 살든 저 땅에 살든


산다는 것은 갑질하는 것이다



*시집, 한낮, 시가 무릎에 앉았다, 불교신문사








자위하는 자위 - 이형근



어스름 깔리는 청양*의 호수공원
스미는 삼나무향에 이끌려 앉았다
아랫도리가 묵직한 게 찌부둥하다
산바람에 고추나 꾸덕하게 말려야지
이놈은 임자를 잘못 만나 늘 꿉꿉하다
가끔씩 용두질에 자위로 무마한다
풀고 나면 개운치 않아 도시 찝찝하다
품어 줄 여인이 없지는 않은데
꼬리를 흔드는 게 생경스럽고
변덕스러운 여우비 같아 귀찮다


석양을 물질하는 새가 낮게 날고 있다
호수에 앉은 햇살에 대나무 숲이 사각인다
가득 찬 중력을 풀어 줘야지, 아이쿠야


안개꽃 플레어스커트가 벤치에 앉은 바지춤을 감쌌다
그대로 주저앉았다, 훼방 놓을 뻔했잖아
귀테는 엷게 엷게 쫑긋거리고, 용두머리는
사타구니를 뽀개고 일어나 불끈불끈 치대고
떠나간 여인은 혀를 날름거리며 도리질이다


앳된 야성을 사르고 뒤통수에서 사라진다
손잡고 가는 뒤태가 깃털처럼 팔랑이고
실바람에 댓잎도 비비적이며 속닥거린다
혼잣말을 사부랑인다, 석류가 농익었을까
저리 솔직해 보지 못한 고추에게
그래도 사랑은 고매한 거야, 용두야



*청양 호수공원은 산둥성 칭다오시 청양구에 있는 베이징 올림픽을 기념하는 조각공원이다.





이형근 시인은 인천 계양산 자락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고 인하대 공대에서 금속공학을, 동국대 불교대학원에서 불교학을, 그리고 문학의식으로 시단에 점을 하나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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