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슬픈 육식 - 김창균

마루안 2018. 7. 18. 22:28



슬픈 육식 - 김창균



여름은 슬픈 육식의 계절


필시 애비가 다른 자식들을 앞세우고

종종걸음으로 나들이하는 암탉과

어미 닭을 따라가며 소리를 한 짐씩 부리는 병아리들

그들이 조금씩 어미를 밀어내고

조상을 밀어내는 동안 나는

부화하지 못한 계란을 깨뜨려 수탉들에게 먹인다


여름은 슬픈 육식의 계절

나는 배고플 때마다 등급이 낮은

붉은 고깃점 같은 눈물을

뜯어 먹었으나

눈물은 슬픔 쪽에서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잠에서도 불안을 버리지 못하는 예민한 가축들 등 뒤로

희고 창백한 달이 질 때까지

나는 내 몸의 목울대를 꺼내

한 번 서럽게 울어도 보았다


여름은 슬픈 육식의 계절


바람에 떠밀리는 구름에서도

울컥 비린내가 나는 

그런 여름은.



*시집, 마당에 징검돌을 놓다, 문학의전당








춘화(春畵)를 보는 밤 - 김창균



지금이 그러하듯 먼 옛날에도 그랬겠지

더 원색적인 밤을 기다려

한 번에 생략되는 생의 중간 페이지


전복해야 해

식상한 연애의 날들과

금기가 많은 세상


어둠이 풍요로운 젖처럼 농후해질 때

내 은밀한 속내를 내가 다 듣고 지나가니

불쑥 생기가 부풀어 부풀어 오른다


하여

팽팽히 당겼다 순간 놓아버린 몸이여

어둠이 가장 농후해진 밤

내 욕망의 가장 은밀한 자리에 놓아보는

신성한 생의 체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