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앉은뱅이 장씨 - 이강산

마루안 2018. 7. 17. 22:06

 

 

앉은뱅이 장씨 - 이강산

-六場3

 

 

시장통 빠져나가기가 이렇게 힘들구나

오늘도 한 바퀴 돌고서야 해 떨어졌다

다섯 갠가 여섯 개 좀약 팔았고

장꾼들 틈바구니 멀찍이

막국수 한 그릇에 허기만 채웠다

참빗이며 좀약 바늘쌈 좌판을 끌며

서른 살도 넘겼으니 벌써 한평생

없는 다리 대신 두 팔로 기어다니다 보면

생선골목 채소전 상포사 순대집

장터 사람들 모두

밥 대신 막국수로 살아가고 있구나

좌판 곁에 쭈그리고 앉아

나처럼 다리 대신 팔로 살아가는구나

좋다는 오일장 두루 돌아

파장 무렵 돌아갈 때면

나처럼 눈물 대신 흘러간 뽕짝도 쏟는구나

아랫도리의 고무튜브를 쿡쿡 찔러오는

한기에 떨다 보면 알겠구나

이백 원 삼백 원 남기는 기쁨으로

장터에서 한평생 늙어가는 사람들

시장바닥을 기다 보면 알겠구나

 

 

*시집,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 실천문학

 

 

 

 

 

 

역류 - 이강산
-앉은뱅이 장씨


해거름 지나 돌아가는 길
당신은 온다
삶의 하역장 같은 오일장 시장바닥
지난 봄, 지난 겨울, 십 년 전 어느 날의 좌판
참빗과 좀약과 몇 묶음의 양말
그대로 온다

우리가 마주쳐 아슬아슬 몸을 피하듯
이 시장바닥을 돌아가는 길은 없다
손금 같은 이 길을 걸어 아버지는 여든 살에 닿았다
그 세월의 절반쯤
이 길을 왕복한 내 삶의
참빗과 좀약과 몇 묶음의 양말

십 년 전의 어느 봄, 어느 겨울처럼
당신이 오는 저기 저 시장바닥의 끝
빽빽한 속옷과 생선과 사람들 틈바구니
내 걸어갈 길 더듬어
당신은 온다
부욱북 절반의 몸통 끌며
어디론가 돌아가는 사람처럼 온다


*시집, 물속의 발자국, 문학과경계

 

 

 

 

# 이강산 시인은 1959년 충남 금산 출생으로 198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 <물속의 발자국>, <모항母港>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