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죽음 또는 주검에 관한 어떤 기록 - 김연종

마루안 2018. 7. 17. 21:56



죽음 또는 주검에 관한 어떤 기록 - 김연종
-사체 검안서 쓰는 날



이미 굳어버린 과거를
두 주먹으로 꽉 움켜쥐고 있다
그믐달처럼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아직 못다 한 말들이 흘러나온다
밭고랑 같은 한 生이
영정 속에서 웃고 있다

숙면


사체 검안서를 쓴다
사망 장소 ; 주택 내
사망 종류 ; 병사라 적고
사인란에 自然回歸死라 쓰려고
관 속을 들여다 보니
드럼통 같은 한 生이
밭으로 바삐 돌아가기 위해
두 발만 밭고랑을 향해
흙가래처럼 뻗어 있다


사인란에
自然回歸史라 다시 쓴다



*시집, 히스테리증 히포크라테스, 지혜








'존엄사와 안락사'의 관점에서 주어진 지문을 분석하고 가장 소신 있는 의료행위를 행한 의사를 고르시오 - 김연종



代數代命


고깔 같은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양 날개를 퍼덕인다
항암 스케줄을 모두 마치고 나자
탈모한 벼슬이 솜처럼 푹신하다
유체 이탈한  붉은 닭볏이
심장처럼 뛰고 있다
수술용 로봇이
닭똥 같은 몽우리를 들어내자
탁란의 둥지를 떠난 폐계 한 마리
식물처럼 봄볕을 게워내고 있다


1) 단지 노환이라는 병명이 붙은 임종이 임박한 환자에게 일체의 심폐소생술을 거부하고 주기도문만 반복적으로 외워대는 중환자실의 내과의사


2)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10대 미혼모의 처지를 고려해 태몽을 경험한 임신 20주의 산모에게 보호자 동의없이 소파수술을 감행한 산부인과 의사


3) 죽는 게 소원이라 되뇌는 불면증 환자의 소원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수면제를 죽음의 명약이라고 처방하여 실제로 음독자살을 감행한 우울증 환자에게 면담을 요청한 정신과 의사


4) 소극적 안락사에 만족하지 않고 호스피스병동의 말기암 환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펜토바비탈을 정맥 주사한 통증의학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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