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종점 다방 - 김수우

마루안 2018. 7. 15. 22:41

 

 

종점 다방 - 김수우


한 모퉁이에서 화초가 말라 가고
또 한쪽에는 프라스틱 꽃나무 무성하다
날마다 틀어놓은 때묻은 노래로
비어 가는 생의 앞뜰
천식환자로 늙어 버린 시계가 가르릉가르릉
흠집 많은 하루를 밀고 가는데
문득, 창 밖은 목련이다
불시에 달려온 듯, 숨찬 그리움, 한순간
바람 안고 뚝뚝 떨어진다
놀라워라 땅에 내려앉는 법
치열해라 미련을 버리는 힘
그 옆에서 나는
앞발가락을 편 채 나자빠졌던
시장통 구석의 생쥐 죽음과 난 상관없음을,
아무 관계도 아님을 중얼거린다
노래에 열중한다 심심하다
지친 비너스 석고상 뒤로 목련이 지는
변두리다방 여기저기 긁힌 탁자 위에서
내 모든, 모든 추억은 고요하다

 

 

*시집, 당신의 옹이에 옷을 건다, 시와시학사

 

 

 

 

 

 

여기야, 여기 있어 - 김수우

 

 

15촉 알전구로 흔들리던 단칸방의 하늘

걸핏하면 퓨지가 나갔다

한꺼번에 와락 달려들던 어둠

그때마다 더듬더듬 앉은뱅이 책상서랍을 뒤져

토막양초를 찾아내던 어머니

울렁이는 꽃불로 어둠의 어깨를 밀치며

삐걱이는 의자를 딛고 두꺼비집을 열었다

 

어디야?

묻는 내 목소리에 내가 먼저 마음을 놓는 동안

적막은 검은 너울로 주춤거렸다

멀뚱한 어둠을 불거진 무릎으로 마주 앉으면

속눈썹 위로 내리던 존재의 무게

반쪽 사과알로 구르는 법도

숯으로 만든 뿔을 세우는 법도

그때 그렇게 배운 것

 

모랫바람이 따가울 때

그려놓은 사방무늬가 자꾸 어긋날 때

어머니는 보풀 많은 쉐터 차림으로 찾아온다

토막양초 뒹구는 묵은 서랍을 슬며시 열어 준다

퓨즈 나가는 일이 없는 아파트 두꺼비집을 열고

어둠에 친숙해지는 법,

깨어진 알전구 위를 걷는 법을 보여준다

 

여기야, 여기 있어

 

 

 

 

# 김수우 시인은 1959년 부산 출생으로 1995년 <시와시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길의 길>, <당신의 옹이에 옷을 건다>, <붉은 사하라>, <젯밥과 화분>, <몰락경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