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미리 써본 유언 - 김상철

마루안 2018. 7. 12. 22:39

 

 

미리 써본 유언 - 김상철

 

 

내 죽거든

너희 형제만 모여

가장 싼 수의로 염하고

가장 얇은 관에 담아

앞산 밭머리 석자 깊이로 묻어라

입회인으로 마을이장이면 족하다

여러 사람이 문턱을 드나드는

번거로움을 없게 할지니

삼일도 길다

하루면 족하고 밤에는 불을 꺼라

봉분도 평토로 하고

십년이 지나면

풀도 깎지 말고 묵혀라

아침을 먹고

지게를 둘러메고

산에 들던 그 일상의 습성대로

진실로 너희와 이별하고

산의 품에 들라니

 

 

*시집, 흙이 도톰한 마당에 대한 기억, 고두미

 

 

 

 

 

 

밥상 풍경 - 김상철

 

 

네 살 녀석이 밥을 떠 넣고

한 살 녀석이 옹알거리며

오누이 하는 모습

그늘을 돌아 들어온 밝음이

이부자리 온기와 어울려

엮어낸 아침 창가의 실루엣

넥타이를 묶던 손이

출근의 초바늘을 멈추고

거울 속으로 아내를 불러

저 그림 좀 봐

당신과 내가 그리는

저 그림 좀 봐

 

 

 

 

# 김상철 시인은 1968년 충북 단양 출생으로 충북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6년 <청주문학> 신인상을, 2005년 공무원문예대전 최우수상(희곡)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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