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나쁜 기억에 대한 대처법 - 이철경

마루안 2018. 7. 9. 17:55

 

 

나쁜 기억에 대한 대처법 - 이철경


귓속에서 윙윙거리던 벌레 한 마리
뇌 속까지 들어갔는지
종일 어지럽고 열이 나는데
그놈을 끄집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네
성냥개비로 후비면 헛소리만 나오고
한참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작전을 바꿔야 했어!

잠시 후퇴를 선언하고 게릴라 작전을 썼지
살며시, 아주 살며시
면봉을 구멍에 갖다 대고 냅다 후볐지
우라질! 벌레가 요동을 치는데
얼마나 난리를 치는지
피가 나오고 벌레는 더 깊숙이 들어가
골 속을 헤집고 다니네

더 깊이 들어간 벌레를 잡으려면
굴 속에 들어가야 하기에
박살을 내야겠기에
작두를 준비했지
그놈을 잡으러 만반의 준비를 하고
힘껏 썰어 내는데

아뿔싸! 벌레는 연기처럼 공중으로 오르더니
골통이 부서져 버렸네

그냥, 두고두고 벌레 엉덩이 찌르면서 공생할 걸 그랬나?


*시집, 단 한 명뿐인 세상의 모든 그녀, 북인

 

 

 



영전(靈傳) - 이철경


떨어진다는 것
비가 아닌 낙엽이 아닌
신발이든 육중한 그림자든
떨어진다는 것은 순식간에 울음이 터진다는 것
우울한 비처럼 날카로운 햇살처럼 또는 거룩한 눈물처럼
뚝- 뚝- 바닥으로 내리꽂히는
모든 사물은 아직 터지지 않은 울음을 담고 있다는 것.

떠내려간다는 것
장대비로 흘러가든 강가로 떠밀려가든
자꾸만 아래로 침전되어 간다는 것은 막막한 일
살아서 절박한 사내 세월에 떠내려간다는 것은
의지와 상관없이 어디론가 흘러간다는 것은
잊힌다는 것이다
사라진다는 것은 끝내 눈물 흘리는 것.

지금, 청연(淸烟)한 강가에 떨어진 붉은 꽃잎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自序

내 시의 자양분은
지난 슬픈 기억들과
현실의 고단한 삶과
앞날이 그리 행복하지 않을 거란
불안 심리에 기인함을 알고 있다

그래서 시 쓰는 행위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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