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망초꽃 필 때 - 강영환

마루안 2018. 7. 9. 12:12

 

 

망초꽃 필 때 - 강영환

 

 

산기슭에 애인을 지운 날 할미꽃은 가슴에 오후를 심었다

따라 가겠다고 잡는 소매 뿌리치며 통곡이더니 숱한 오후가 지나간 뒤에도 곁에서 피는 망초꽃을 보면 못다 핀 사랑 참 많이도 남았구나 생각했다

잡초 우거진 띠집 옆 빈자리에 해마다 피는 할미꽃을 보면 남아 있는 애증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했다

곁에 와 울던 바람도 구부정해져 잠이 들었다

낮은 지붕에 풀꽃이 지고 곰삭은 맘 씀씀이가 잊힐 무렵 할미꽃이 졌다

앞산 이마에 홀로 저문 달을 걸었던 그 숱한 오후가 붕분 가라앉듯 몰래 가버렸다

망초꽃 하늘하늘 여린 몸짓으로 늦바람을 잡던 어린 청춘도 골짜기에 묻혔다

오후는 다시 오지 않고 할미꽃 필 때마다 옆구리에서 이명 같은 옷자락 끄는 소리가 났다

 

 

*시집, 물금나루, 도서출판 전망

 

 

 

 

 

 

다시 불면을 기다리다 - 강영환

 

 

한 잔 커피에도 잠들지 못하는 건 떠도는 혼이 닿지 못하는 푸른 산천이 있어서가 아니다

발붙이지 못한 땅, 젖은 몸이 홀로 가는 그림자에 눈물 그렁그렁 맺혀 벌판에서 깊어졌다

새벽녘 구부려 잠든 침상 곁에 찾아와 우는 소쩍새가 반갑기 때문만은 아니다

솥 적다 솥 적다 구봉산 수정산 어디 가까운 울음인가

잊고 살았던 이웃이 귀담아 듣던 소리다 잠든 지붕 위에 뿌려져 어느 낮은 귀에 닿아 한 번쯤 관심 가져 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 남은 탓이다

애절한 울음이 낮은 집을 잠 못 들게 할 때 기다려도 궁핍한 내 마음을 가려주기나 했든가

따스한 숨결이 돌아오는 발자국 소리가 문 앞에 서 있는 줄도 모르고 혼자만 듣고 싶은 서늘한 새벽녘 피울음에 한 잔 커피를 진하게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