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길 위의 풍장 - 김광수

마루안 2018. 7. 9. 12:19

 

 

길 위의 풍장 - 김광수

 

 

햇물 곁으로 길은 끊어졌다

 

장마 뒤끝

사금파리 같은 뙤약볕이 모종되고 있는

길섶 엉거시 솔개그늘,

말캉말캉

굵은 혈관 같은 지렁이 한 마리

산 개미떼들에게 육보시 꽃을 피운다

 

늘어진 청솔나무 우듬지

청설모 한 마리가 눈을 비빈다

 

몇 날 며칠 폭우 속,

저 붉은 알몸뚱어리 용 한 마리가

질흙밭을 용암처럼 흐르며

햅쌀처럼 씻긴 새 흙을 뿜어내는 것을 보았다고

 

 

*시집, 비슷비슷하게 길을 잃다, 문학과경계사

 

 

 

 

 

 

길을 건너면 - 김광수

 

 

신촌로터리, 횡단보도 빨간 신호등 건너편

겨울비 쌉싸래하게 흩뿌리는데

검고 낡은 외투깃을 세우고

서 있는 저 중늙은이

노고단 아랫동네 신작로 구판장에서

막걸리 봉초 새우깡 비사표 성냥 팔다

홀아비로 죽은 절름발이 동수 아재 닯았네

 

신호등 바뀌어

나는 저쪽으로 그는 이쪽으로

횡단보도 가운데서 스치듯 마주친 얼굴

영락없이 돌아가신 동수 아재네

 

길을 다 건너면

내가 저승이고 그가 이승인가?

그가 저승이고 내가 이승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