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참 좋은 저녁이야 - 김남호

마루안 2018. 7. 6. 19:04



참 좋은 저녁이야 - 김남호



유서를 쓰기 딱 좋은 저녁이야
밤새워 쓴 유서를 조잘조잘 읽다가
꼬깃꼬깃 구겨서
탱자나무 울타리에 픽 픽 던져버리고
또 하루를 그을리는 굴뚝새처럼
제가 쓴 유서를 이해할 수 없어서
종일 들여다보고 있는 왜가리처럼
길고도 지루한 유서를
담장 위로 높이 걸어놓고 갸웃거리는 기린처럼
평생 유서만 쓰다 죽는 자벌레처럼
백일장에서 아이들이 쓴 유서를 심사하고
참 잘 썼어요, 당장 죽어도 좋겠어요
상을 주고 돌아오는 저녁이야



*시집ㅡ 링 위의 돼지, 천년의시작








그러게 말씀입니다 - 김남호



지각 있으신 분들이
저렇게 세발자전거를 타고 과속하시면,
과속으로 붙잡혀서 소풍 끝나는 날까지
지각하시면,


아시겠지만 소풍은


동풍이 되기도 하고, 서풍이 되기도 하고, 삭풍이 되기도 하고, 일진광풍이 되기도 하고, 미풍에 장풍이 되기도 하는데,


나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끝끝내 돌아가지 못하시는데,


아무려면
이 지긋지긋한 소풍 끝내셨다고
그리 쉽게 돌아가시기야
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