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약천리 허상갑씨가 굴비 식사를 하고 난 뒤- 곽재구

마루안 2018. 7. 6. 18:52



약천리 허상갑씨가 굴비 식사를 하고 난 뒤-  곽재구



약천리 허상갑씨는
육이오 때 인민군도 다녀오고
국군에도 다녀온
특이한 이력이 있는데요


마을에서 제일 부자인
청송 심씨 종손 댁 큰머슴을 살다가
주인 아들 대신
인민군에 다녀왔겠지요


낙동강 전투에서
패잔병이 되어
터벅터벅 걸어서 고향 마을까지
혼자 돌아왔는데요


이번에는 주인 아들의
국군 영장이 나와서는
영락없이 또 국군에 들어갔겠지요


전쟁 다 끝나고
허상갑씨 집으로 돌아왔을 때
주인댁에서 한상 걸게 차려냈는데
잘 구운 법성 굴비 한마리를
꼬리부터 뼈 하나 남김없이 다 먹은 뒤에
소 몰고 곧장 들로 나갔지요


자운영꽃 수북하게 핀
논을 갈아엎으며
이러이러 땅 보니까 힘 난다
전쟁놀음 같은 건 한순간에 잊었지요



*시집, 와온 바다, 창비








부겐빌레아 - 곽재구



꽃이 필 때 아무 소리가 없었고
꽃이 질 때 아무 소리가 없었네


맨발인 내가
수북이 쌓인 꽃잎 위를 걸어갈 때
꽃잎들 사이에서 아주 고요한 소리가 들렸다


오래전
내가 아직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
그 소리를 만난 적 있다


세월이 가고
눈물과 눈물 사이로 난
헐벗은 강을
당신과 내가 손잡고 건널 때에도
고요한 그 소리는 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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