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물속의 언어 - 조인선

마루안 2018. 7. 2. 23:02



물속의 언어 - 조인선



아내가 모국어로 말할 때면 한 마리 물고기 같다
베트남의 더운 열기에 꿈틀거리는 늪 속의 열대어 같다
결혼한 지 육 년이 지났어도 그런 아내는 싱싱하게 꿈틀거린다
오래전 물속에서 바라본 세상은 내 머릿속에만 있었다
숨을 참고 까치발 서며 물밖으로 나오던 순간 내속의 언어는
물고기의 그것처럼 둥둥 떠올랐다
시집와 아내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때마침 해도 저물어 친정 엄마와 통화라도 할 때면
아내는 어항 속 금붕어처럼 몸이 작아졌다
나나 아내나 밥에 대한 유혹은 생의 감옥
말싸움 한 뒤 한동안 대답을 피하는 아내는 감옥을
탈주하는 물고기 같았다
삼천 개의 섬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고향 하롱베이
아내의 아비는 고기 잡는 배의 선장이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먼 곳의 어미를 그리워하는 딸을 보면서
아내는 저수지의 오리처럼 고개 숙이고
물속을 한참이나 보고 있었다



*시집, 노래, 문학과지성








신성한 숲 - 조인선



내 가난한 정신이 기거하는 숲으로 가면
나무마다 물고기 걸려 있고 그 밑에 비늘이 수북하다
말갛게 속이 빈 물고기들은 어둠을 한 입 한 입 오물거리며
자신만의 언어를 허공에 뱉어낸다
떠다니는 언어는 물고기의 광기 어린 사랑이다
나는 슬픔을 꾹 참고 나뭇잎 긁어모아 물고기 하나 덮어주었다
숲은 언제나 바람 불어 좋았다
내 사나운 정신이 가쁜 호흡뿐이었지만 허공에 떠 있는 말들이
물고기의 것인지 내 것인지 숲에서는 분간이 어려웠다
사랑은 늘 그랬다
나의 즐거운 여행이 물고기 하나하나 호명하지 못했지만
숲은 밤새도록 나를 지켜주었다
촛불 들고 둘러보아도 달콤한 열매는 어디에도 없다
오로지 물고기의 거친 호흡이 있을 뿐
생은 온전한 정신에 속하지 못한다
나무들은 외로움을 버텨내기에 물고기들을 길러준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면 내 정신은 물고기가 그리운지
해 저무는 숲으로 간다
언제였던가 살아난 듯 깨어보니 머리맡에 물고기 하나
불에 그을린 체 가쁘게 호흡하고 내 사랑은 깨어날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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