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동행 - 우대식

마루안 2018. 7. 2. 17:25

 

 

동행 - 우대식


아버지가 입원한 날 밤부터 소쩍새가 운다
원주에서 평창, 장호원에서 서울,
사우디에서 평택에 이르는 먼 길을
잊지 않고 찾아온 새
오늘 병실에서 운다
오랜 유목의 삶을 살아온 아버지
그 가슴에 끝내
동행해야 할 하나의 소리가 있었나 보다
마디 가는 손가락이 가끔
경련을 일으킬 때마다
소쩍,
수액 맑은 물이
또옥 또옥
떨어질 때마다
소쩍 소쩍
아버지 몸속으로 들어가는 새들
딱딱하게 굳어가는 간을 쪼며
소쩍
소쩍
이제 다시,
아버지와 함께 먼 길을
동행하시는 중이다


*시집, 설산 국경, 중앙북스

 

 

 

 

 

 

학교 - 우대식


괴로움이 나의 학교였으며 배움이었다. 내 일체가 여기에서 나왔으므로 마땅히 저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나 그 또한 마땅히 그러한 일이므로 크게 머리 숙일 필요도 없다. 괴로움이여, 한여름 땡볕 아래 앉아 황홀한 지옥을 생각한다. 그곳에도 봄이 있고 더러 가을도 있는지, 후미진 골목에 괴로운 영혼들이 모여 앉아 술잔을 칠 주막은 있는지, 말미를 얻어 다른 지옥으로 방랑을 떠날 수 있는지, 女子는 있는지.... 괴로움에서 나왔으므로 괴로움으로 돌아갈 터이지만 나로 인해 괴로워하고 또 괴로워할 진짜 어머니가 그곳에는 계시는지 궁금하다. "괴로움은 나의 학교"로 시작하는 교가를 부르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면 지상의 모든 얼굴이 환하게 슬퍼진다.

 

 

 

 


# 우대식 시인은 1965년 강원도 원주 출생으로 1999년 <현대시학> 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 <단검>, <설산 국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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