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광인의 여름 외투 - 김수우

마루안 2018. 7. 2. 22:08



광인의 여름 외투 - 김수우



내 굿판을 잃어버린 게 몇 해인가
골목어귀 빈병처럼 웅크려
기다린 게 얼마며, 기다리지 않은 게 얼마인가
더러운 담요가 위엄이 되어버린 지금까지


아무도 안아보지 못해도
여름을 눈사람인듯, 겨울을 돛배인듯 넘는
내 하루는
서툰 배반을 향해, 변명을 향해 열린 네 비천한 외투
나는 바랜 환각으로 존재하니


생수를 구걸하면서
늙은 묵언이 구름 썩은 하수구로 잠겨들어도
나는 고대 이집트의 여사제이다
짚으로 닦던 놋숟가락 다 닳은지 옛적이지만


내 신성을 버린 적 없으니
비루하고 또 비루해도
네 편리한 문명을 나는 선택한 적 없으니
함부로 나를 거래하지 않았으니


동광동 뒷골목
내 예배는 여전하다
네게 세운 눈독도 손톱도 아직 유효한 상징
내 사전을 사서 읽으라



*시집, 젯밥과 화분, 도서출판 신생








눈곱 - 김수우



한 남자, 생선횟집 수족관을 들여다보고 있다
중얼거린다
위협적인 언사와 달래는 어투
물고기가 자신을 수족관처럼 바라본다고 화를 내는 그는
몰래 수족관을 그리워하는 중일까
버려졌지만 스스로 버린 거라 믿는,
한세월 맨땅을 지고 온 남루
그가 잉여가 된 건
내가 그를 기억하지 않은 까닭이다
비딱히 걸린 가방마저 반쯤 열려 헐렁한 속을 드러내었다
다 쏟아질듯 위태롭지만
다행히 주인의 빈속처럼
비딱한 가방 안은 은밀하고 까마득하다
보이지 않는 도시가 그에게서 매일 붕괴되고 있으니
물고기에게 시비 거는 그의 눈곱은
삐걱이는 난간의 무게
모래톱을 빠져나가는, 늙수그레한
시간을 본다 결코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자기장 밖을 떠도는, 밀려오는
잉여의 눈곱, 눈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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