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모란공원 - 유경희

마루안 2018. 6. 29. 22:07

 

 

모란공원 - 유경희


한 소년이 태어나 마음속에 하나의 신념을 심고
그 신념에 한 점 부끄럼 없이 살다가
민주주의는 피투성이라는 것을
뼈마디가 골절되는 고통이라는 것을
지상에 적고 갔다.

삶과 죽음이 팔레트의 물감처럼 섞이는 허공에
청년 하나가 앉아서 우리를 본다
그가 아프게 몸을 바꾸고 있다
삶의 광장에 누구도 아니고
아무도 아닌 사람들이 모여서
낯설어서 해독할 수 없는
자기 삶을 들여다본다.

똑같은 북소리에
발을 맞추는 사람들을
허공의 그가 내려다보다가
더 고요한 곳에 있는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 보인다.


*열사 시집/ 그대는 분노로 오시라/ 도서출판b

 

 

 



비명 - 이영숙
-모란공원에서


가까스로 차는 멈췄다 관성과 마찰력이 제로가 될 때까지 브레이크를 붙잡느라 콘크리트 바닥에 낯을 뭉갠 타이어 역사는 비명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다

갈필의 스키드 마크에서 열기는 가시지 않았다 점점 뜨거워져갔다 사람들이 불을 쬐러 모여들었다 심장을 꺼내 담그면 전류가 흘렀다 피눈물이 피눈물을 닦아주었다

종잇장만 한 웅덩이에 소금쟁이가 날아왔다 물의 귀퉁이를 잡아 늘려 반반하게 펼쳐놓고 먹이를 기다리듯 유리 같은 나날을 보내면서도 그는 기대수명을 다 채울 것이다

돌판에 새겨진 생졸연도만큼 감각적인 건 없다 생과 졸 사이를 한마디로 요약한 문장이 달려나온다 생시의 톤으로 받아 읽으며 산 자는 제 모서리를 다시 한번 버린다


*열사 시집/ 그대는 분노로 오시라/ 도서출판b

 

 



전태일 - 표성배


내, 가슴 깊이로는 측량할 수 없는

몸으로 쇠를 녹이고자 스스로 천오백 도의 불이 된 당신,

당신은 너무 멀리 있고 공장은 너무 가까워

자꾸 잊는 날이 많다


*열사 시집/ 그대는 분노로 오시라/ 도서출판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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