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에고이스트 - 이현승

마루안 2018. 6. 28. 19:35



에고이스트 - 이현승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두 가지.
어린 사람과 힘 센 사람, 심지어
힘 센 사람은 어린 사람을 좋아한다.


여기에 사랑의 비애가 있다.
돈 많고 늙은 남자가 어리고 예쁜 여자를 탐하는 것
어리고 예쁜 여자가 늙은 남자의 주머니를 탐하는 것


돈도 없고 어리지도 않은 옥상의 남자가 묻는다.
생이여! 이제 저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메가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거기 꼼짝 말고 있어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연인은 없다.
그리고 그건 우리가 불행감으로 자주 도망치는 이유이다.
하지만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도 별로 없으며
그것이 우리가 한심하게 인생 역전을 꿈꾸는 이유이다.


우리를 쓰러트린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었는가.
누구든 다 이해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자.


다만 우리는 조금씩 비껴 서 있고
부분적으로 연루되어 있으며
시작하기엔 이미 늦었지만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



*시집, 생활이라는 생각, 창비








다단계 - 이현승



실패란 얼마나 안온한 집인가.
결과의 자리에서 보면 모든 일이 자명하다.
'임자 나 왔어'는 전과 14범이 한 말이었다.
교도소로 되돌아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쳤지만


죄짓지 않고 사는 것은 가능한가.
도망치는 삶은 가만히 있어도 목이 마르다.
개과천선과 종신회개로 거듭났지만


그러나 올 것은 오고야 만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침 뱉고 떠난 자들은
실직과 파산 사이를 쫓기다
뒷덜미를 붙들린 채 고향으로 돌아와
하나같이 자동차나 보험 상품을 팔았다.
둘을 같이 팔기도 했다.


그러므로 물 한잔을 건네는 것은
목말라본 사람들의 덕성이며
삶이란 서로 권하고 축이고
또 이렇게 밥 한끼 얻어먹고 다음을 기약하는 일이지만


떠안기는 것이 천국이든 안전이든 자동차든
무엇을 팔든 실패는 하나의 기술이다.
실패한 사람의 손도 뿌리친다면
하느님은 누구의 손을 붙잡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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