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대의 전술 - 전대호

마루안 2018. 6. 27. 23:07

 

 

그대의 전술 - 전대호

 

 

아버지를 몰아낼 때

그대가 사용했던 전술

기억하고 있는가?

기계처럼, 시간처럼

그대는 아무것도 몰랐다

한 걸음 오직 한 걸음

그대는 한 걸음만을 알고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는 그대는

어느새 늙은 권투선수를 닮아 있고

귀만 아무 소용도 없이 밝아졌다

그대는 회상에 잠긴다 그때

 

신기하게도 배경음악처럼

그대의 오래전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그대의 아이들이 그대의 전술로

밀고 들어오는 것이다.

 

 

*시집, 성찰, 민음사

 

 

 

 

 

 

옥함(玉函)의 면도날 - 전대호

 

 

가슴이 벅차올랐다

미로 속을 헤매다 죽은 백골들이

영웅을 보듯 우러러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벽들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리라고는

그 역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광산용 드릴을 움켜쥔 두 손보다

가슴이 더 크게 떨려왔다

이렇게 쉽게 무너지다니

다 엉터리였다

나는 진실을 발견한 거다 최초로

엉킨 실타래 역시 쉽게 끊어졌다

그의 눈이 어떤 면도날보다 더 빛나기 시작했다

 

그후 그는 무엇을 보든 면도날을 들이댔다

이상하게도 무엇이든 쉽게 절단되었다

절단되는 모든 것을 믿지 않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의문이 생긴다

내 생명은 어떤가?

마땅히 철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리라

그는 옥함에서 면도날을 꺼내 쥐고

걷어부친 흰 손목으로 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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