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모퉁이 - 권오표

마루안 2018. 6. 28. 19:19



모퉁이 - 권오표



모퉁이가 있다는 건 가슴이 조금 아리기는 하나
그래도 좋은 일


네 마음의 찻집 구석에 앉아 철지난 샹송을 허밍으로
따라 가고 따라 가고
이끼 덮인 숲속 왼쪽 날개가 찢긴
산제비나비의 안부를 묻고


모통이가 있다는 건 네 마음 한켠에
내 무늬가 남아 있다는 흔적


능소화 툭툭 지는 저녁에
네가 사라진 골목길을 저물도록 두근대며 바라봐도 좋은 일



*시집, 너무 멀지 않게, 모악








찬비 - 권오표



고물상 골목길에 다시 어둠이 스몄다
녹슨 유모차가 할머니 뒤를 어깃어깃 따라 왔다
한때는 손주들의 재롱이 넘치던 자리에
지금은 골판지 상자들이 앉아
할머니 손에 끌려 골목을 들어선다
일 킬로 육십 원에 의탁한 여생
오늘은 칠 년째
쥐오줌 벽지만 지키고 있는 영감한테
소주라도 한 병 사들고 가야겠다며 걸음이 바빠진다
슈퍼 옆 가로등이
깜빡 졸다 깨어 할머니 유모차를 살며시 밀어 준다
대책 없이 찬비만 추적추적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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