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할미꽃 - 이태관

마루안 2018. 6. 25. 20:49

 

 

할미꽃 - 이태관


바닥만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생이 있다

인사를 하렴 저렇게
먼저 고개 숙이시잖니
바다가 비좁은 새우는 한 생을
허리 굽히고 살지
아이야,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유모차 밀고 가는
사연을 아니?

무릎이 꺾였다면
다섯 목숨은 하늘만 바라봤겠지
밥술이라도 넘겼다는 건 허리가 굽었기 때문
오일장 돌듯 온 몸으로 바퀴를 굴리는
구부러진 생
하늘이 높아진다는 건
바닥에 가까워졌다는 것

비 내리면
그 비를
흰 등뼈 우산이 받치고 간다
오남매 기른 젖가슴 사이로 빗물이 샌다
쫄래쫄래
유모차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시집, 나라는 타자, 북인


 




자리 - 이태관


전생을 기억한다는 듯
산벚나무의 싹이 올랐다
머리 위로 구름이 흐른다는 건
싹 틔울 허공이 만들어졌다는 것

뼈가 단단해지면
몸피를 줄여
아이에게 스스로 자리를 내어 주는

보목항에서 자리를 먹는다
물살이 거센 곳일수록 자리의 뼈는 단단하지
태어난 제자리를 지킨다는 거
나무와 닮았다

노부부가 지키고 있는 움집도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운명처럼
자리잡은 곳에서 서로를 닮아가는 생

자리에 들 날이 멀지 않았다




*自序

가장 어두운 때는
자신이 눈과 귀를 막았을 때다

당신을 향해
나의 모든 것을 열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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