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야적된 가슴 - 강시현

마루안 2018. 6. 25. 21:19

 

 

야적된 가슴 - 강시현

 

 

어제도 몰래 다녀온

낙천과 염세의 틈바구니에서

스물네 시간의 무게를 재봉질한다

 

순서대로 입 귀 눈을 단단히 잠그고 가슴만 남겨둔다

기쁨도 슬픔도 지나치면 눈물이 거꾸로 매달린다

 

입과 귀와 눈을 꿰맨 뼈들의 봉분 위로

역사의 줄기는 꽃을 내고 덩치를 키워왔으니

눈물이 거꾸로 매달리는 것은 참으로 옭은 일이다

 

나의 무기는 외로움과 기다림

태양의 불편한 빛이 찢고 간

너덜거리는 가슴을

어둠 속에서 대충 시침질하였다

 

뼈들의 봉분 위로 덧없이 야적될 슬픈 가슴을 

 

 

*시집, 태양의 외눈, 리토피아

 

 

 

 

 

 

어떤 배우의 연기 - 강시현


납빛 여우털 같은 하늘이 내려앉던 날

파르스름히 머리 깎고
파리한 전(全) 생(生) 짊어지고
대사 속으로 엉금엉금 기어들어가 보지만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

뱃가죽엔 힘이 없고
무대가 질식시켜버린 달셋방의 사상(思想)

자본의 논리 앞에 불어터진 라면발 앞에서
나의 연기 주식(株式)은 연일 하종가

밧줄을 매는 실제연기에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먹혔다

이상(理想)은 그렇게 겨우 정리되었다

 

 

 

 

# 강시현 시인은 1965년 경북 선산 출생으로 경북대 정외과를 졸업했다. 2015년 계간 <리토피아>로 등단했다. <태양의 외눈>이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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