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참치 통조림의 일생 - 정덕재

마루안 2018. 6. 25. 20:13

 

 

참치 통조림의 일생 - 정덕재


상온에서 유통기한이 7년이나 되는
참치 통조림을 냉장고에 보관한다
멸균의 공간에서
냉장의 상태로 들어간
깡통은
심해의 어둠을 기억하고 있기에
전혀 외롭지 않다고 고백한다

한밤의 깜깜한 주방에 앉아있으면
냉장고 밖으로 울리는
참치의 꼬리짓을 들을 수 있다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소리는
불 꺼진 연습실을 배회하는
배우의 넋두리로 주방 안을 맴돌고
7년 동안 냉장고에 갇혀있을지도 모를
참치를 위해
나는 수시로 냉장고 문을 열고 닫는다

심해의 고독을 달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참치와 깡통은
하나의 몸이 되고 있다


*시집,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 시와에세이

 

 




세상의 거의 모든 통조림 - 정덕재


고등어 꽁치 번데기 골뱅이
동원참치 오뚜기참치 사조참치
옥수수 깻잎
저염 처리해도 여전히 짜디짠 햄
국내 닭고기 생산량 1위 기업 하림의 닭가슴살
백도와 백도
델몬트 파인애플

바람 한 점 들어갈 틈도 없는
쇠갑옷을 입고
몇 년을 서 있거나
누워있어야 하는 운명이다
누군가의 손끝이 닿지 않으면
길게는 7년
짧아도 2년을 버티는
세상의 거의 모든 통조림
한 줄기 빛도 받지 않는
깊고 깊은 숙면
혹은 일어날 수 없는
영면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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