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라다크 식으로 살기 - 유경희

마루안 2018. 6. 24. 21:16

 

 

라다크 식으로 살기 - 유경희


휴대폰을 잃어버린 날 라다크 식으로 살기로 한다
종이에 편지를 쓰고 우체국에 가고
답장을 아주 오래 기다리고
하루 한 끼의 식사와 남루한 몇 벌의 옷에 만족하고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하고
티베트 사자의 서(書)를 읽고
가판의 노인에게서 야채를 사고 꿀벌 한 마리를 살리고
지갑을 잃어버린 날 라다크 식으로 살기로 한다
씨앗을 심고 오래 기다리고 벌레와 나누어 먹고


*시집. 내가 침묵이었을 때, 문학의전당

 

 




노마드 - 유경희


초지를 찾을 수 없어서 집을 짓기 시작했지
바닥을 놓으니 땅의 노래를 들을 수 없었다
기둥을 세우니 풍경이 상처를 입는다
지붕  만드니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낮에는 갈 곳이 없었고 밤에는 무엇엔가 쫓겼어

내가 지상에서 바라는 것 하나
우루무치행 편도 티켓 하나

 



*시인의 말

세상으로 나 있는 길을 잃어버리고
책 속으로 나 있는 길을 걷다보니
아주 고요한 곳에 오게 되었다.
이곳에 머물러야겠다. 한 생애가 지나가는 동안
잉크 정원을 가지고 싶은 아이가 있었다.
그녀는 그 꿈을 몇 번의 생애가 지나가는 동안 잊지 않고
새로 태어날 때마다 첫 번째 일기장에 적곤 하였다.
잉크로 그려 넣은 나무에 잎이 돋고 새가 와서 날아와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