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동로골 아이들 - 박철영

마루안 2018. 6. 25. 19:51

 

 

동로골 아이들 - 박철영

 


소 엉덩이에 이름을 새긴 듯
머리만 봐도 뉘 집 아인 줄 안다
방금 싼 쇠똥처럼 뭉직한 냄새가
머리에서 나기 시작하면
며칠 후엔 도장 버짐이 번졌다
그럴 땐 방앗간의 모빌유를 얻어다
바르면 그만이었지만
짓궂은 아이는 동네를 돌며
성한 애들 머리를 들이 문대곤 해
빡빡머리가 거뭇한 도장 버짐이 되어
동로골 아이라는 표시가 되었다

오십 너머 머리 더 환해진 친구들
그때의 흔적이 유달리 번들거린 걸 보면
천생 동로골 아이가 분명하다

 

*시집, 월선리의 달, 문학들

 

 

 

 

 

 

옥수역에서 - 박철영


소싯적 우린
달을 따고 싶어 했지
그때마다 뒤안 대나무가
하나씩 잘려 나갔고
마른 간짓대 끄트머리엔
환한 달덩이가 매달리곤 했지
허탕 차는 날도 종종 있었지만
우린 가슴에다
수천 개의 달을 따 모았지

병훈이 그 친구
서울로 올라가더니
달동네라는 옥수역에서
여직 달 따러 다닌다는 소문 무성하던데
누군가는 그 친구가
옥수동 달동네 사람들한테
가슴속의 달을 하나씩
나눠 주는 것을 보았다는 둥
아직도 병훈이 가슴엔
달덩이가 몇 개나 남았을까

 

 

 

# 박철영 시인은 1961년 전북 남원 출생으로 한국방송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2002년 <현대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비오는 날이면 빗방울로 다시 일어서고 싶다>, <월선리의 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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