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수영장 목격담 - 김상철

마루안 2018. 6. 24. 20:27

 

 

수영장 목격담 - 김상철

 

 

솔직히 말해서 몸뚱이가 아름답다는 것은 만부당이다.

일시적이거나 특별한 경우 그럴진 몰라도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처럼

우리들 살 몸뚱이란 가늘거나 굵거나 짧거나 길거나

통상 엉망이다.

사장님, 선생님, 여사님의 체신은 어디 가고

털 벗겨진 닭처럼 겨우 동물계의 나약한 종의 하나일 뿐이니

저들에게 아니 우리들에게 무슨 영장의 힘이 숨어 있단 말인가.

노소 가릴 것 없이 태초의 어린 것들이

순한 양처럼 그저 물장구를 놀고 있다, 놀고 있는 것이다.

수영을 끝내고

각자 옷을 입고 액세서리 붙이고 호칭을 달고

저마다의 공간으로 문을 열고 돌아갈 때

벌거벗은 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위엄으로 점잖음으로 아름다움으로

또 여러 가지 욕망의, 꿈의 방면에서 완벽해진다.

이것은 단순히 맨 몸뚱이에 옷을 걸친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종으로 진화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은 십만 년 백만 년

저절로 몸이 변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갈구의 옷을 입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맨 몸뚱이의 인간 종에서

최종적으로 한 번 더 진화를 하고 있는 셈이다.

 

 

*시집, 흙이 도톰한 마당에 대한 기억, 고두미

 

 

 

 

 

 

아들의 뒤통수 - 김상철

 

 

등을 보이며 잠들어 있는 6살 난 아들

나와 똑 닮았다는 뒤통수

아들의 뒤통수를 보는 건

37살의 현재가 6살의 과거를 보는 것

 

그러니까 우린 지금

과거와 현재가 같은 시공에서 만나

한판 낮잠을 때리는 기막힌 인연을 즐기는 셈

 

내가 돌아누우면

아들은 아버지의 뒤통수에서

6살 현재의 눈으로 37살 미래를 볼까?

 

내 뒤통수가 아들 뒤통수의 미래라면

내가 살고 있는 인생이

참으로 맛난 인생이라는 것을

몸으로 증명해 놓아야 할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