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목격담 - 김상철
솔직히 말해서 몸뚱이가 아름답다는 것은 만부당이다.
일시적이거나 특별한 경우 그럴진 몰라도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처럼
우리들 살 몸뚱이란 가늘거나 굵거나 짧거나 길거나
통상 엉망이다.
사장님, 선생님, 여사님의 체신은 어디 가고
털 벗겨진 닭처럼 겨우 동물계의 나약한 종의 하나일 뿐이니
저들에게 아니 우리들에게 무슨 영장의 힘이 숨어 있단 말인가.
노소 가릴 것 없이 태초의 어린 것들이
순한 양처럼 그저 물장구를 놀고 있다, 놀고 있는 것이다.
수영을 끝내고
각자 옷을 입고 액세서리 붙이고 호칭을 달고
저마다의 공간으로 문을 열고 돌아갈 때
벌거벗은 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위엄으로 점잖음으로 아름다움으로
또 여러 가지 욕망의, 꿈의 방면에서 완벽해진다.
이것은 단순히 맨 몸뚱이에 옷을 걸친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종으로 진화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은 십만 년 백만 년
저절로 몸이 변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갈구의 옷을 입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맨 몸뚱이의 인간 종에서
최종적으로 한 번 더 진화를 하고 있는 셈이다.
*시집, 흙이 도톰한 마당에 대한 기억, 고두미
아들의 뒤통수 - 김상철
등을 보이며 잠들어 있는 6살 난 아들
나와 똑 닮았다는 뒤통수
아들의 뒤통수를 보는 건
37살의 현재가 6살의 과거를 보는 것
그러니까 우린 지금
과거와 현재가 같은 시공에서 만나
한판 낮잠을 때리는 기막힌 인연을 즐기는 셈
내가 돌아누우면
아들은 아버지의 뒤통수에서
6살 현재의 눈으로 37살 미래를 볼까?
내 뒤통수가 아들 뒤통수의 미래라면
내가 살고 있는 인생이
참으로 맛난 인생이라는 것을
몸으로 증명해 놓아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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