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 김창균
팔순을 넘긴 아버지는 기력이 다하여
이제 기는 것조차 힘들다
젖 뗀 아이처럼 기는 것이
멋쩍은 모양이다
괄약근에 힘이 떨어져
한 번 열리면 닫히지 않는 몸의 막장
열린 문 사이로 환하게 내장이 드러난다
그런 그는 가끔 웃음 하나 들어 보이는데
그때마다 틀니 사이로 말들이 새 나온다
바닥난 말이다.
말이 바닥을 치다니.
저녁 연못에 쭈그리고 앉아
용케도 시간을 알아 입 닫는 연꽃을 보다
힘주어 오므린 아이들 항문처럼
결연한 몸 보니 슬며시 웃음이 나와
입 주위 쪼글한 주름 오므렸다 펴며
밥 먹는 노모 곁에서 맞는 저녁은
참으로 기막힌 경전 한 페이지쯤은 되겠다.
*시집, 먼 북쪽, 세계사
화장(火葬) - 김창균
나의 건망증은 여기서 사정없이 깨진다
나를, 내 몸을 오래 드리우던 그림자들
여기서 부활하고
마치 점토 같은 몸들,
허리 구부리면
금세 금 가고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몸들
나를 모독하던 그 많은 건망증.
등급도 없는 술집을 드나들며
환락을 구걸하던 한생,
무당으로 살다 처와 자식 둘 남기고 죽은
동생의 유골을 어린 소나무 아래 묻고
돌아오는 길
국도 휴게소에선 유기견들이
짚고 온 목발을 물어뜯으며 사납게 짖는다
한생을 등 돌리고 돌아가는 길이
이렇게 더디고 멀어
다시 목발 든 몸이 절룩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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