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연꽃 - 김창균

마루안 2018. 6. 23. 22:42



연꽃 - 김창균



팔순을 넘긴 아버지는 기력이 다하여

이제 기는 것조차 힘들다

젖 뗀 아이처럼 기는 것이

멋쩍은 모양이다

괄약근에 힘이 떨어져

한 번 열리면 닫히지 않는 몸의 막장

열린 문 사이로 환하게 내장이 드러난다

그런 그는 가끔 웃음 하나 들어 보이는데

그때마다 틀니 사이로 말들이 새 나온다

바닥난 말이다.

말이 바닥을 치다니.


저녁 연못에 쭈그리고 앉아

용케도 시간을 알아 입 닫는 연꽃을 보다

힘주어 오므린 아이들 항문처럼

결연한 몸 보니 슬며시 웃음이 나와

입 주위 쪼글한 주름 오므렸다 펴며

밥 먹는 노모 곁에서 맞는 저녁은

참으로 기막힌 경전 한 페이지쯤은 되겠다.



*시집, 먼 북쪽, 세계사








화장(火葬) - 김창균



나의 건망증은 여기서 사정없이 깨진다

나를, 내 몸을 오래 드리우던 그림자들

여기서 부활하고

마치 점토 같은 몸들,

허리 구부리면

금세 금 가고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몸들

나를 모독하던 그 많은 건망증.


등급도 없는 술집을 드나들며

환락을 구걸하던 한생,

무당으로 살다 처와 자식 둘 남기고 죽은

동생의 유골을 어린 소나무 아래 묻고

돌아오는 길


국도 휴게소에선 유기견들이

짚고 온 목발을 물어뜯으며 사납게 짖는다

한생을 등 돌리고 돌아가는 길이

이렇게 더디고 멀어

다시 목발 든 몸이 절룩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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