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꿈꾸는 둥지 - 이자규

마루안 2018. 6. 23. 22:34

 

 

꿈꾸는 둥지 - 이자규

 

 

겨울 동안의 뿌리가 퍼 올린 노동으로

깨어난 가지들 밤샌 싹눈이 붉다

 

별빛 가까운 좁은 방 내 꿈의 무정란은

하냥 날개만을 기다리다 줄 핏발 선

알 속의 마지막 주문

탁탁

피 묻은 어둠에서 깨나고 싶다

 

남새밭을 가로지르는 나비의 생애 팽팽히 담아

숲의 소리 절로 푸르른 하늘 문 밖

갈퀴바람 발목을 내려치거든

흔들리면서 흔들림마저 흔들어주면서

낮게 흐르는 도랑물 오랑캐꽃 얇은 웃음 따라

죽은드끼 살고 싶어라

 

 

*시집, 우물치는 여자, 황금알

 

 

 

 

 

 

단풍 - 이자규


알겠네, 기다리지 않아도 편지는 도착하고
계절의 중력은 몸을 낮추어 녹슬어가네
비워질 세상을 미리 알고나 있었는지
이동설계를 긋고 있는 다람쥐는
나무숲 사이를 굴러다니다 떨어져 죽은 동료의
두 귀를 세우네, 들리는가
흐느끼는 안개를 달래며 옆구리를 내주고 있는 절벽의 끝
멀리 누군가의 발에 채인 돌들
부서지며 뒹굴고 서로 부둥켜 안고
서로 상처 핥는 소리 들리는가
장대비 때려 아름다워진 삶의 무늬
칼바람 맞은 몸일수록 뒤척이지 못한 혓바닥
참 붉다, 뜨겁게 제 피멍든 살껍질
일어나 한시절 시뻘건 참회 벌이고 있네
서러움과 아쉬움이 만나서 독버섯이 된 가슴
뼈가 짓이겨진 그리움을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이명처럼 들려오는 강물소리 번개 섞는 소리
내 활화산의 중심에다 구멍을 내고 싶어라
알겠네, 타오르는 것은 언제나 내일과
어제 사이에서 그 존재가 되어가네

 

 

 

 

# 이자규 시인은 경남 하동 출생으로 2001년 계간 <시안>으로 등단했다. <우물치는 여자>가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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