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슬픔 사용 설명서 - 전윤호

마루안 2018. 6. 23. 23:52



슬픔 사용 설명서 - 전윤호



벼랑에서 바다를 보면
섬들이 있지
절대 가라앉지 않는 슬픔이
마주보고 있지
바람이 불면 파도가 일듯이
겨울이 오면 동백이 피고
너는 또 이 섬으로 찾아왔네
하루에도 여러 번 몸을 던지는 기억들
잊혀지진 않아
사람의 기억이란 게
한번 진다고 사라지지도 않아
겨울을 견디는 먼 나무 붉은 열매처럼
새로운 섬으로 날려가겠지
가지를 뻗고 숲을 만들어
또 다른 슬픔을 마주보겠지
이 이치를 알았으니
이제 돌아가렴
그 자리에 설 다른 이가 오고 있단다



*시집, 봄날의 서재, 북인








하지 - 전윤호



낮과 밤이 같아지는 날이
내게도 올까


열두 시간 슬프면 그만큼
웃을 시간도 올까


기대만 하며 살기엔
너무 먹은 나이


땡볕에 지친 감자가 중얼거린다
그래도 조금 더 기다리겠니





# 쉽게 이해되는 싯구에 깊은 울림이다. 심오한 표현 없이도 마음을 움직이는 시의 전형을 보여준다. 능청스럽게 절망을 갖다 붙인 벼랑에서 절실한 희망이 엿보인다. 희망의 뒷면에 늘 슬픔이 있음을 이 절묘한 시에서 제대로 배웠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무와 두 아이, 두 사람과 나 - 박석준  (0) 2018.06.24
그 무렵 - 황학주  (0) 2018.06.24
연꽃 - 김창균  (0) 2018.06.23
꿈꾸는 둥지 - 이자규  (0) 2018.06.23
잃어버린 명함 - 윤병무  (0) 2018.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