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삼천포에 가면 - 최서림

마루안 2018. 6. 19. 22:25



삼천포에 가면 - 최서림



삼천포, 삼천포, 삼천포


세상 모든 벌거벗은 나무들이
들뜬 걸음으로, 봄을 바라보며
남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이월,
늑골 깊숙이 숨어 있는 삼천포를
가만히 불러내어 본다


햇살처럼 투명한
해풍처럼 부드러운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산다화 같은 내 사랑


삼천포, 삼천포, 삼천포


아침 햇살이
집집마다 균등하게
부족함이 없이 내리고 있을


잘게 부서지는 파도 위로
거칠게 부서져서 따사로워진 마음의 수면들 위로
넙치 빛 저녁 햇살이
16분 음표마냥 통, 통, 통 튀고 있을
삼천포에 가면
삼천포에 갈 수 있다면


충무, 마산, 진해
그 언저리에서 헤매다가
뒷걸음질 치며 돌아오고 마는....


내 마음이 남쪽을 바라
길게 목을 내밀고 있다


삼천포, 삼천포, 삼천포



*최서림 시집, 물금, 세계사








오랑캐꽃 - 최서림



모든 꽃은 다 꽃을 피운다
바위취, 국수나무 같이
그늘 밑에 자라는 것들도
때가 되면 꽃을 피운다
평생 남의 그늘에 가려
영영 꽃이 없을 것 같은 생명들도
언젠가는 꽃을 피워 올린다
버려진 들판의 찔레꽃 냄새가
담장 안의 장미꽃 향기를 감싸 안듯,
이름이 뭣해서 불러주기도 민망한 쥐똥나무
꽃냄새가 화장실 냄새를 덮어주듯,
누군가를 위해 물길처럼 낮아지고
남의 인생을 데워주기 위해
불길처럼 굽어져 본 사람, 한평생
남의 그늘에 가려 제 그늘이 없는 사람도
이른 봄 오랑캐꽃처럼 꽃을 피워
젖은 낙엽을 살짝 밀어 올릴 줄 안다
하늘을 들어 올려 순간
제 그늘을 희미하게 만들 줄 안다





# 겨울에 가기 좋은 여행지로는 남도가 최고다. 겨울도 아니고 봄도 아닌 2월 말쯤이면 더욱 좋겠다. 여수, 삼천포, 충무,, 지금은 잊혀지는 지명이 삼천포와 충무다. 시절이 변하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유래가 깃든 지명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쉽다. 시인이 삼천포를 연달아 세 번 부르듯 내 마음은 아직도 남도를 향해 길게 목을 내밀고 있는데 갈 곳 잃은 삼천포 아가씨가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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