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꽃, 남자 - 박수서

마루안 2018. 6. 18. 20:30

 

 

꽃, 남자 - 박수서

 

 

다행히 해는 무사하다

철지난 사내와 죽다 살아난 알뿌리식물이

투정처럼 서로의 황갈색 털을 비벼대며 함께 산다

무엇도 변하지 않는다

누구도 먼저 떠나지 않는다

세상은 폐역으로 우리를 지나간다

 

창문 밖 해가 목례하여, 꽃이 숨는다

사내가 꽃 끝에 빗살수염벌레처럼 들러붙는다

오늘은 참 좋은 날이라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크득 크득

사진기 플래시를 빵하고 터치니,

팝콘처럼 흰 울음꽃이 방안을 울렁거린다

 

더는 사내를 꽃 곁에서 목매달게 할 일이 아니다

더는 꽃을 사내 곁에서 놀아나게 할 일이 아니다

 

 

*시집, 슬픔에도 주량이 있다면, 북인

 

 

 

 

 

 

꽃배 - 박수서

 

 

마지막 여자처럼

사랑보다 더 헤프게 정주고

 

온 핏줄이

신경쇠약에 걸리고

나머지 열꽃도 우두둑

떨어지고

그 여자 물살에 떠내려가고

정말 아무렇지 않을 줄 알고

그렇게 사랑하는 것으로 알고

 

해가 밝아지고

달이 마법의 힘을 얻을

갈수록 깊어지는 그리움,

떠내려가는 여자의 선미(船尾)에 매달려

사랑하는 마음 갈기갈기 물 곁에 찢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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