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빛에 닿은 어둠처럼 - 조은

마루안 2018. 6. 14. 19:15



빛에 닿은 어둠처럼 - 조은



나는 오래
경계에서 살았다


나는 가해자였고
피해자였고
살아간다고 믿었을 땐
죽어가고 있었고
죽었다고 느꼈을 땐
죽지도 못했다


사막이었고 신기루였고
대못에 닿는 방전된 전류였다


이명이 나를 숨 쉬게 했다
환청이 나를 살렸다


아직도
작두날 같은 경계에 있다



*조은 시집, 옆 발자국, 문학과지성








너무 늦었다 - 조은



스물이 될 때도 서른이 될 때도
마흔이 될 때도 쉰이 될 때도
나이 드는 것이 힘들지 않았다
스물 되기 전 서른 되기 전
마흔 되기 전 쉰 되기 전
죽을 줄 알았다
짧은 삶이
안타깝지도 초조하지도 않았다


삶이 짧아 불행에 초연할 수 있었다
굴욕에도 쓰러지지 않았다


백혈구 수치가 바닥을 치고
치료약이 없다는 병이 하나 더 늘어도
삶은 밀려온다


다시 피는 꽃들의
비명이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