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외로움의 깊이 - 조찬용

마루안 2018. 6. 14. 21:56

 

 

외로움의 깊이 - 조찬용

 

 

산 밑 외딴집이 풍경처럼 멀다

흰 눈의 어지러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기침이 깊은

외따로운 노인 때문이었을까

외딴집으로 이어진 발걸음이 보이지 않는다

등대처럼 산을 지키던 저녁 등불이 눈을 뜨지 않고

동네 마실길로 이어진 길엔

눈바람이 쓸고 간 갈기만 길고 차다

늙은 아내 먼저 보내고

혼자 세상의 무게를 견디는 일도 쉽지 않았으리라

미망의 시간이

너덜너덜 집을 짓기도 했으리라

외롭고 쓸쓸한 건 말이 없다

사는 일도 흰 눈처럼 내리다

슬그머니 적멸을 꿈꾸는 일인데

오늘은 그가 가고 없다

몸부림치며 누군가를 그리워한 죄 무섭다

 

 

*시집,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북랜드

 

 

 

 

 

 

느리거나 또는 쉬거나. 2 - 조찬용

 

 

허허로울 때 술값 잘 내는 봄날 같은 친구가 병원 영안실에서 나를 부른다

50대 후반까지 그럭저럭 잘 굴러온 친구였다 형님 동생 우기던 친구가 밤새 안녕이라더니

남의 병 걱정만 하던 친구가 제 죽음 모르고 저렇게 흰 국화꽃 밭에 기대어 웃고 있다

죽음은 참 묘한 심장을 가졌다. 새벽안개길 난데없는 안개의 가속 페달이 그를 덮쳤다

 

바퀴는 무엇이든 삼키고 싶다

암컷을 찾아 도로를 내달리던 고라니의 목마른 사랑도

밤참을 몰고 끝내 놓쳐버린 살쾡이의 어금니도

길 건너 봄의 씨앗을 뿌리려고 했던 노부의 늦은 걸음까지도

바퀴는 삼키고 싶다

바퀴에선 비릿한 피의 냄새가 난다

바퀴가 지나간 자리마다 피들이 넙죽이 누워 줄기를 잇고 있다

 

무한의 속도로 달리고 싶은 그 끝으로 안개처럼 피어 오는

저 피들의 꽃

속도  둥근 의자가 될 수 없는 죽음이라면

바퀴는 느리거나 쉬는 일이다

천천한 바람에 흔들리는 산사 풍경소리의 맛깔처럼

모처럼 집에 쉬면서 늘어지게 잠을 즐기는 고소한 냄새처럼

속도는 나태해야 한다

 

오랜 친구 문상하고 돌아오는 길

또 누군가의 향불을 피우고 있는 속도가 보인다

죽음은 느리게 오는 게 아니고

바퀴의 속도에 매단 채 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