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버려지는 신발들은 슬프다 - 김유석

마루안 2018. 6. 13. 20:36



버려지는 신발들은 슬프다 - 김유석



사람들은 왜 신발을 벗어두고 가는 걸까
그게 슬펐다, 그 어떤 유서보다
물가에 나란히 놓인 구두 한 켤레


어떤 무거운 길이 거기까지 따라와서
맨발이 되었을까


문단속을 하는 대신
토방에 신발을 반듯이 올려놓고 집 비우던 아버지
삼우제 날 문밖에 내어 태우던
부르튼 발바닥들이 슬펐다.


그래서일까
유령들은 대부분 발을 감춘다.


신발을 신고 있다는 건
어디쯤의 고단한 이정(里程)
새 신발을 산다는 건
닳게 해야 할 바닥이 남았다는 것


신발을 잃어버리고 울먹이던 유년의 맨발에
유행 지난 멀쩡한 구두 한 벌
버리기 전 헐겁게 신겨보며


몇 켤레쯤 여벌을 가진 생을 떠올려 본다.



*시집, 놀이의 방식, 문학의전당








안구건조증 - 김유석



1.
눈물 한 병을 샀다.


물려받은 유산 중 평생 쓰고도 남을 그것
살아오는 동안 따뜻이 나를 지켜온 그것
고통에 울분에 격정에 일찍이 탕진해버린


필요할 때마다 한두 방울씩 넣으라는
그것, 필요할 때를 위해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유효기간이 적힌 그것


그것 없이는 볼 수 없는 멜로드라마가 사라졌는지
하고많은 신파에 그것이 동나버렸는지
우연한 모서리에 정강이가 찍힐 때에도
그것 대신 욕지거리부터 내뱉어지는
뿔처럼 머리만 달린 삶


누군가의 안이 대책 없이 들여다보일 때
물컹한 내 그림자에 내가 넘칠 때
걸고 들먹일 어깨가 없어
내외하듯 뚫을 수 있는 멍한 허공이 내게는 없어
눈물 한 병 사들고 오는 길


조화(造花)처럼 망초들이 웃고 있다



2.
보지 않아도 될 것들을 너무 많이 본 탓이다.


풍경들이 갑자기
보푸라기처럼 뜯기는 것은
눈썹 밑에 펼쳐지는 것들에 이골 난 까닭,


먼 곳을 보라 한다.
자주 깜박거려도 꺼풀이 걷히지 않을 땐
그저 눈물이 약이라 한다, 그런데


선명함을 전제로 만들어졌다는
이 눈물은 가짜다.
겹쳐 보이는 것들
까끌거리고 뻑뻑한 것들을 씻어냈더니
눈앞이 깜깜하다. 아무 것도 보이질 않는다.


눈을 비비는 부작용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