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열두시부터 한시 사이 - 박남원
사방으로 날리는 사모래가루가
널무러진 철근, 반네루 위거나
우리들 머리 위로 평등하게 내려 앉는
낮 열두시부터 한시 사이
서둘러 꺼칠한 점심을 먹은 후
미장공들은 스치로폴을 깔고 낮잠을 자고
우리들 데모도꾼도 허기진 휴식을 위해
구석진 자리를 찾아 잠을 청한다
첫눈이 빠르게 한차례 오고 난
십이월 중순의 회색빛 하늘
허리와 옆구리에 들어붙은 냉기를 문지르며
다독이며 청하는 잠 속으로는 어렴풋이
불투명한 개인적 평화가 어른거리고
밥이 되지 않는 시를 버리고 쫓기듯 찾아온
노가다판에
버릇처럼 남북통일이 어른거리고
어른거리다 가볍게 사라지는 꿈결같은
낮 열두시부터 한시간 동안의 짧은 휴식시간
콧구멍이 시커멓도록 쌓이는 먼지일지라도
평등하므로 이곳에선 아무도 불평할 줄을 모르듯
세상에서 진실이 밥이 될 수 있고
모든 인간이 진실 앞에서 평등해질 수만 있다면
내가 이렇게 세상에서 낙엽처럼 떨어져 앉은 자리는
그러나 얼마나 행복하랴.
*시집, 내일이 아니어도 좋다, 연구사
산다는 것 - 박남원
산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눈물로 타들어가는 아우성일지라도
살아서 저 푸른 별들을 향해
혹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눈보라 속을
천천히 그러나 살아 일어서 걸어오는 저 수많은 논과 밭들을 향해
한움큼의 기꺼운 껴안음이거나
백양목처럼 허연 웃음으로 긴밀하게 내통하는
흔들리지 않으며 우리가 우리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은 저 논과 밭들과 뜨거운 숨결로 뒤섞여
흙투성이가 되어 목숨을 기르는 그런 것들과 어깨동무하고
오 산다는 것은
땀흘려 맺는 싱싱한 청보리처럼 투명한 눈을 뜨고
마침내 지상에 붉은 해가 뜰 때까지
식구들이 돌리는 기계 쇳소리 밤새
쇳소리 먼지구덩이 깔끔하게 덮어놓은 가식의 공장 지붕 위로
언젠가 단 한번 붉은 해가 뜰 때까지
인간의 희디흰 속살 에누리 없이 비추는
평평한 곳에서의 만남을 위해
인간이지 못하게 하는 이 세상 모든 것들과
싸운다는 것 산다는 것은
분노로 뒤척이는 긴 불면의 밤과
아버지의 살아 온 전 생애를 내동댕이쳤던 굳고 잔인한 세월을 뚫고
무릎치듯 피어나는 정갈한 꽃잎과
이제부터는 울지 말아라 아가야
진절머리 나는 학살과 이리떼들은
우리의 기나긴 싸움으로 기필코 무찔렀느니
전 논과 담벼락 어귀 어디에도 어둠은 고이지 못하리라
세상에 가지지 못하여 서러운 사람들은
가진 자들의 사유와 욕망이 사라짐으로 인하여
우리일 수 없는 모든 벽은 무너져 더 이상 어둠은 고이지 못하리라
산다는 것은 그리하여 그날이 올 때까지
살아 끝까지 싸운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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