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지구를 이해하기 위한 두 번째 독서 - 여태천

마루안 2018. 6. 11. 21:16

 

 

지구를 이해하기 위한 두 번째 독서 - 여태천


국경을 넘어가는 밤이다.
마지막일까.
밤은 또 바람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 짧은 시간에
경계 위에서 우리의 얼굴은 변했다.

지금 우리의 마음은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무엇을 알고 싶은가.
잠시 동안 우리는 갈 곳을 잊기로 한다.

바람이 아침을 깨우고
팔을 뻗어 홀로 떠나는 불빛을 만진다.
나머지의 체온이 느껴진다.
오래 기대고 있었던 저 건물의 글씨
그 아래서 근심도 없이 내일이 왔다.
몇몇은 그랬다.
몇몇은 눈을 비비며 고개를 돌렸지만
만약 우리의 말이 절실했다면
나머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면
분명 우리는 갈 곳을 잊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

잊지 않고 바람은 또 분다.
노래가 홀로 떠나는 저 불빛을
지켜 줄 것이라고 위로하자.
밤은 또 바람과 함께 한때의 우리를 지나가는 것임을
우리는 서로의 국경 위에서 확인했다.

누군가 불러 준 서로의 이름들
그 이름들을 불러 본다.
언젠가 잊힐 이름들이 지금 막 태어나고 있다.


*시집, 저렇게 오렌지는 익어 가고. 민음사


 




지구를 이해하기 위한 여덟 번째 독서 - 여태천


우리는 어른처럼
갑자기 찾아온 천재지변
그런 종류의 실패들에 대해 회의하고 있었지.
방전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어른처럼 우리는
맥주잔에 떠도는 거품을 보고
크기에 대한 감각을 의심했네.

모래처럼 눈이 쏟아지면
밀짚모자의 눈사람과
헤어진 연인들은 어디에 있지?
누구와 커피를 마시고
아픔은 누구에게 이야기하지?

우리는 태양 아래
마음이 들킨 사람들
어른처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때
내리는 저 눈 속을 천천히 걸어와
아이가 손을 잡아 주었네.

눈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렇게 눈물이 나오는 걸까.
이 따끈한 잠은 어디서 왔을까.
우리가 모르는 깊은 계절의 잠이
이렇게까지 비정치적인 무음의 세계가
갑자기 어디서 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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