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중심축이 흔들린다 - 이상원

마루안 2018. 6. 11. 21:14

 

 

중심축이 흔들린다 - 이상원

 

 

내 몸의 중심축이 기울기 시작한다

오른쪽 왼쪽 조금씩 흔들리다 끝내

연시처럼 철벅 땅에 떨어진다.

포기하고 싶다 일어나지 말고 이대로

어둠으로 차단한 채 저 혼자 고요한

땅속으로 피난처럼 녹아들고 싶다.

머리를 드는 순간 허공은 그가 감춘

혼돈의 도깨비불로 번뜩일 것이다.

좌우로 번갈아 난타당한 내 몸은

일어서고 쓰러지기를 연신 반복하며

이력처럼 주름을 달아갈 것이다.

그래도 땅은 제게로 흘러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두꺼운 포장을

철갑처럼 두르고, 그저 가야 한다고

떠민다. 땅과 허공 사이 막막한 공간을

개미마냥 자세를 낮추고 소속도 모른 채

걸으며 마냥 흔들리는 중심축, 끝내 나는

헝클어진 주름 타래로 내던져질 것이다.

 

 

*시집, 내 그림자 밟지 마라, 황금알

 

 

 

 

 

 

황당한 결론 - 이상원

 

 

어둡구나, 아직은 이른 새벽

바다는 잠든 채 결빙의 틀에 갇혀 있고

몇 줄기 잔물살만 해안에 이르러 열병처럼

흰 포말에 부서지며 목말라하지만, 어둡구나

아직은 추운 계절. 그 작은 몸짓을 매만져줄

한줄기 가등의 빛도 닿아오지 않는 것을.

불빛은 저들끼지 한 지붕 아래 둘러 앉아

오늘은 또 어느 바닥을 긁어댈 것인지

분주하게 음모의 그물코를 헤아리고

깊이 사린 치부까지 긁혀간 치욕의 기억에

간밤 내 불면에 뒤채이던 바다여, 늦게서야

선잠을 안고 취기처럼 둥글은 꿈에서도

치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짓뭉개져 갔지만

어쩔거나, 부두에서 흥정 되는 잠깐의 풍요를

나눠 들고 뒤뚱거릴 그들만의 평화를 위해

햇살의 그림자에나 기대어 속살마저 내발리는

막막한 해저의 날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해일은

막숨처럼 어쩌다 잠시 일고, 이내 사라지고

언제나 그랬듯 해안에는 또 다른 잔 물살 몇이

아무도 듣지 않는 몇 마디 상처를 중얼대고 있을 것이다.

 

 

 

 

 

*시인의 말

 

끝자락에 닿아서야 비로소

돌아보는 게 길이다.

기억의 물소리도 분분한 꽃잎도

하얗게 지워지는 창 너머, 바라보면

예전부터 있었던 길은 거기 그대로인데

문듯 까마득히 멀어지는 그 위로

아이들은 지나가고, 형형색색

낯선 시간의 얼굴들이 지나가고

이제 더는 볼 수 없는 행간의 맑은 여백(餘白),

푸른 별 그림자 어디선가 손짓하는

망각의 적막한 바다, 더러 잠도 보인다.

 

-<저문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