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불면의 분열 - 황규관

마루안 2018. 6. 11. 21:15



불면의 분열 - 황규관



자다 깨고 자다 깼다
동트기 전에는 악몽이 찾아왔다


가난 때문에 그랬다
어제 얻은
모욕 때문에 그랬다


자다 깨고 자다 깼다
뭉친 기억이 풀어지질 않았다


흔들리는 마음 때문에 그랬다
비바람이 되지 못한
먹구름 때문에 그랬다
그 사이로 빛나는 별 때문에 그랬다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노란 꽃을 기다리다 그랬다


지은 죄도 존재가 될까 싶어 그랬다



*시집, 정오가 온다, 삶창








가난한 존재 - 황규관



죽음의 그림자가 모두의 마음에
드리워진 지 한참이 지났는데
그는 기적처럼 다시 일어났다
내게 빌려준 이백만 원을
꼭 받아내고 말겠다는 의지였을까
죽음보다 삶이 더 무서워진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리고
어떤 끔찍함이
나를 흩트려놓았다
너무 깊은 목숨의 힘에게
진저리를 치고 만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껏 미움을 통해서
세상을 배운 것인가


어린 묘목이 물 한 동이를 천천히 마시듯
얼음이 밤새 강을 건너듯






# 황규관 시인은 1968년 전북 전주 출생으로 1993년 전태일 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철산동 우체국>, <물은 제 길을 간다>, <패배는 나의 힘>,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 <정오가 온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