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일 때까지 - 김태완

마루안 2018. 6. 11. 21:04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일 때까지 - 김태완

 

 

안녕, 청춘아

시를 쓴다고 깝죽대더니

궁색한 언어로 다른 놈들처럼

이빨로 나불대던

개 같은 이론, 시론, 사상론, 부르조아

그렇게 한 시절 보내더니

그래도 좋으냐, 이 병신아

 

시는 아무나 쓰냐

할 말은 한다고 나불대더니

무슨 말이나 하긴 했냐, 이 병신아

처먹고 잘 살 생각이나 하지

시가 너에게는 소중하다고 하겠지만

개 좆 같은 장난은 이제 끝났다

안녕, 청춘아

 

잘 가라, 눈물겹도록 고운 여자야

너를 끝내는 탐하지 못하고

원통하게 보내마

가라, 제발 가라, 썩은 청춘아

차마 강간도 하지 못하고 너를 보내마

 

안녕, 청춘아

이제는 영원히 보내마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결코 자위행위도 하지 않으마

 

청춘은 끝났는데

좆같은 저쪽 후미진 골목 어귀에

미친년이 가랭이를 벌리고

나를 부른다

끝끝내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시집, 추억 속의 겨울은 춥지 않다, 오늘의문학사

 

 

 

 

 

 

옛 기억을 더듬으며 - 김태완

 

 

바람이 자꾸 내 머리를 헝클어놓고 있다

바람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것이

신비하지도, 향기롭지도 않은 것이

자꾸 내 머리를 헝클어놓고 있다

 

시는 언제나 바람처럼

내게 왔다가

만나려 하면 저만치 멀어진 첫사랑

잊으려 하면 상처로 다가오는 기억

 

오로지 한 여자만을 남겨둔

가을 들녘에

싸늘이 식어가는 내 의식의 최후처럼

 

시는 언제나

내 겨드랑이 속에서

말없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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