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서어나무 - 전영관

마루안 2018. 6. 11. 20:26



서어나무(西木) - 전영관



천국이란
치료가 필요 없는 영혼들만 모이는 곳
그리움에 감염되면 이승으로 보내졌다


바람을 갈망하던 습성을 버리지 못하거나
구름의 안색을 살피는 영혼들은
귀환을 거절당하고 나무가 되었다


근육을 다 꺼내놓은 채
바람과 몸을 섞는다
뿌리는 더욱 견고해진다


기다린다는 건 앓는 일
한 자리에서 끝장나도록
뿌리로 스스로를 결박한 것들
그리움 따위를 병으로 간직한 것들



*시집, 부르면 제일 먼저 돌아보는, 실천문학사








뇌졸중 - 전영관



신록이 에메랄드같이 보여도
땡볕에 한철 시달리면
낡아서 붉어진다
다년생이어서 나무는
다음을 기약할 수 있지만
하나뿐인 내 나무는
오래도록 침묵으로 천천히 낡아 버리면 그뿐
일그러진 주름과 마비를 밀어내고
새잎을 펼치지 못한다
긴긴 평생도 돌아보면 일 년이었는데
그늘에서 낮잠이나 자느라 나는
지금에야 덜떨어진 염소처럼
머리를 쿵쿵 찧는다





# 전영관 시인은 충남 청양 출생으로 2011년 <작가세계>로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바람의 전입신고>, <부르면 제일 먼저 돌아보는>이 있다. 뇌경색으로 쓰러져 죽음의 문턱을 체험하고 힘을 뺀 잔잔한 시가 인상적이다. 뇌졸중이 무서운 것이라 한 번 쓰러지고 나면 다시 원 위치로 돌아가기 힘든 질병이다. 아직 회복중이나 치열한 시 쓰기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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