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내 몸에 길 하나 생긴 후 - 임후남

마루안 2018. 6. 11. 19:55



내 몸에 길 하나 생긴 후 - 임후남



내 몸에 길 하나 만들었습니다
민들레도 심고
채송화도 심고
그 위로 목백합 한 그루 심었습니다
그늘을 마늘어 주면 어느 날
꽃들도 정신없이 피어나다
오랫동안 묵었던 몸
숨 고르고 바라보지 않을까 싶어서요


채이는 돌맹이들 하나씩 치우다
길은 탑다 하나 만들었습니다
돌 하나 올려질 때마다
아는 얼굴 하나씩 지워지고
어느새 높아진 탑은 울며울며
몸 안을 떠돕니다
제가 만들고도
길은 저 혼자 떠날 수 없어서
오래도록 탑만 맴돕니다


내 몸을 산책하다 보면
조용히 돌아온 몸이
나를 가만 내려다봅니다



*시집, 내 몸에 길 하나 생긴 후, 북인








음모 - 임후남



방을 쓸다 음모를 만났다
한번 구부러져 다시는 펴지지 않는 인생 같은,
누구도 잡아당겨 펴주지 않는 인생 같은,
엎드려 있다 저 혼자 튀어나온 인생 같은,


근데 누구의 것인가, 저 음모는
누구를 향한 음모인가
방바닥 여기저기에서 솟아오르는,
치워도 치워도 여기저기에서 튀어오르는
내 인생에 함부로 끼어드는 저 음모들은


당당한 음모들 사이에서
무안하기만 한데
분노조차 못하도록 길들여진 나는
주눅든 발꿈치 올려들고
방바닥을 쓸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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