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헐 겨, 말 겨? - 차승호

마루안 2018. 6. 10. 19:18



헐 겨, 말 겨? - 차승호



나는 말이지, 우리가 밟고 댕기는 길바닥도

다 얼굴이 있다고 생각허여, 그런디 뭐여? 시적부적 길이란 길 좁은 들길까지 다 콘크리트 발랐단 말이지

뭐 그게 못마땅하다는 건 아녀

농기계 맘대로 대고 무싯날 운동화 신고 들판 댕길 수 있으니께, 진작 그랬어야 되는 것도 맞단 말이지

그런디 말여, 그래도 말이지

달밤 바짓가랑이 적셔놓고 깔깔대던 길 웅덩이, 경운기 몰고 오던 땅방울, 애들 서울 보낼 때 흘린 눈물 자국, 길바닥마다 얼굴이 되고 표정이 되는 그 사소한 것들.... 나는 

말이지, 그 사소한 내력의 흔적도 소중하단 말이지

누가 뭐랴?

날 더운디 툭하면 나는 말이지, 나는 말이지, 자네가 말여? 평생 일만 할 줄 아는 소여, 소. 맥적은 소리 그만하고 샘길 포장하는 날 이장이 콩국수나 해먹자던디,

헐 겨, 말 겨?



*시집, 얼굴 문장, 시산맥사








문화현장 - 차승호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윤수일 밴드가 부른 한 세대 전 유행가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면 있다는 아파트

그런 아파트가 어디 있나, 유행가 가사 속에나 있어서 낭만 아파트로 고쳐 부르기 좋아했는데

아파트 광고에 나오는 쭉쭉빵빵 여배우

언제나 나를 기다려 주기만 하면, 언제나 한달음 달려갈 각오로 노래방 짱짱 울리도록 열창했는데

예당평야, 별빛이 흐르는 서해대교 건너

바람 부는 삽교천 갈대숲을 지나 아파트 공사 한창이다 들판에 공장 들어오면서 유행가 밖으로 현현하는 낭만 아파트

저건 아파트 공사현장이 아니라 대중가요적 관념이 한 세대 건너 구체화되는 문화현장일 거야

가을걷이 하러 내려온 시골집

노래방 화면처럼 변해가는 풍경 탓인지, 짚토매 깔고 앉아 마신 소주 탓인지 불콰한 얼굴로 한참 바라보는데, 이건 뭔가 얼척*이 없다

문화현장이라, 제기랄



*어처구니






# 차승호 시인은 충남 당진 출생으로 2003년 시집 <즐거운 사진사>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4년 <문학마당> 신인상을 받았다. 시집으로 <즐거운 사진사>, <들판과 마주서다>, <소주 한 잔>, <얼굴 문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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