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보들보들한 희망이란 - 박라연

마루안 2018. 6. 10. 18:09



보들보들한 희망이란 - 박라연



먼동이 트자마자 연장이 되면서
모창 가수의 생애조차 부러워하면서


집이, 동상, 젊은 각시로 불리면서


어제 오른 반찬이
오늘 또 올라오는 마을회관 밥상인데도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가 좋아서
때맞춰 그 밥 지으러 가는 사람으로 살면서


여전히 다른 세상을 느끼는 것이
죄가 되는 사람으로 살면서


너를 향해 걷는 힘을
또 그 죄 속에서 찾아내면서


벌을 서듯 폐가의 땅을 일구다보면
너의 면면이 보들보들해져서


자라나는 무수한 손가락들을 깨물며
넓어진 시간들을 천천히
내려오는 일일까



*시집, 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 창비








비극의 염치 - 박라연



기력이
기억력이 좋아서
온갖 주소로 잘도 찾아오지


잊을 만하면 대중교통
자가용
고지서 전화 문자와 등기로 인편으로
순발력도 뛰어나지


그 폭과 길이가 무한대여서
중국 쓰촨성은 물론 네팔도 이미 넘치게 가난한데,
비극의 염전인데
지진이란 놈의 폭발적 전이, 당신네들은
한번 더 네 것 내 것 없이
목메게
울어버리게 하지


문밖에 서서 아예 두 손 펴고 기다리면
더디 올까


아기 낳을 때처럼 숨은
쉴 수 있게 하면서


살려는 둬야 그런 염치는 있어야
탐나는 살림살이 속에


조용히 천천히 스며들어가
간을 보지 오래
견디는 사람의 가슴 느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