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노인 - 김상철

마루안 2018. 6. 6. 19:05

 

 

노인 - 김상철

 

 

단걸음에 오를 인도

스무 걸음에 오르려나보다

택시는 문도 닫지 못하고

차도는 밀려 난감한 운전자들

본다, 임종을 지키는 눈으로

 

더러는 과거로 돌아가

활력 넘쳤던 팔다리를 생각하고

더러는 미래로 달려가

저들 앞길을 가늠하는데

삶은 회의적이거나 적어도 한숨이다

 

그렇다 노인은

십대가 이십대로 성장하고

이십대가 삼십대를 배워가고

그리고 또 오십대가 육십대로 늙어가듯

다음에 나 있는 길을 향해갈 뿐

 

지금 인도로 오르고 있는

한낮의 고요한 정물

저것은 떠나려는 비애가 아니라

생의 완성을 위해 타는

막바지 혼신의 정열이다

 

 

*시집, 흙이 도톰한 마당에 대한 기억, 고두미

 

 

 

 

 

 

4차선 도로를 건너는 아버지의 영상 - 김상철

 

 

초록 신호등이 점멸을 시작하자 멈춰 있던 자동차들이 흐를 태세를 갖추었다. 횡단은 아직 절반 넘게 남아 있었고 아버지의 걸음은 뜀으로 바뀌었다. 어색하게 흔들리는 수족들, 뜀은 걸음보다 빠를 것도 없이 분주하기만 하였다.

 

4차선 도로 너머에는 아버지가 경작하였던 들이 펼쳐져 있었다. 저녁이면 노을이 물들던 큰 도랑이 전과 같은 모습으로 흐르고 있었고, 곡을 하며 떠나보냈던 조모의 산소가 있었다. 그리고 또 아버지의 눈이 저편에서 내가 모르는 추억을 줍고 있었다.

 

새로 지어진 도로는 이편과 저편으로 마을을 양분하였고 소통되기 위하여 횡단하는 일이란 별도의 결심을 필요로 하였다. 오랜 병원생활을 끝내고 반짝이는 기운을 얻어 사차선 도로를 건너다가 아버지는 내 마음의 영상에 사진 한 장을 남기셨는데, 그게 숨을 놓기 전 가을의 일이었다.

 

 

 

 

# 김상철 시인은 1968년 충북 단양 출생으로 충북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6년 <청주문학> 신인상을, 2005년 공무원문예대전 최우수상(희곡)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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