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바람이 나를 지나갈 때 - 유기택

마루안 2018. 6. 6. 18:35

 

 

바람이 나를 지나갈 때 - 유기택


바람 소리가 밤새 물소리 같아
무엇이 아니면서 자꾸 떠내려갔지
그래야 할 것 같았지
돌아누울 때마다 모서리가 배겼어

내가 그렇게 많은 모서리인 걸 알았어야 했을 것 같아

날 선 모서리들이 뭉그러지고
슬그머니 둥글어지고 있었던 거야
바람 소리가 잠을 끌고 다녔지
뭐가 자꾸 가슴팍께서 덜컥거렸어


*시집, 참 먼 말, 북인


 

 



뿌리들이 하는 거라곤 줄곧 - 유기택


가라앉은 막걸리 같은 데를
새끼손가락으로 휘저어보는 일
뿌옇게 들고일어나는 갑갑증을
무소식 대하듯 들여다보는 일
감감한 꽃 걸음마다
꼭, 그 흐린 델 찍어서
맛을 보고서야 직성을 푸는 일
허리께가 뻐근한 봄날마다
짐짓 허리 짚고 서서
하늘에다 대고 중얼거려보는 일
괜한 혼잣말도
자주 올려다보는 일
손닿지 않는 데가 더 갑갑하고
더 근질대는 법이라서
혼자 가지가지 다해보고도
성에 차지 않는 하늘 별 때문에
혼자 흐렸다가도 개어보는 일

아내가 고들빼기를 캐다가
하늘을 보며 마냥 앉았던 거나
눈물 글썽이다가 한숨짓던 일

땅속으로만 천천히 깊어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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