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어느 비가 왔다 간 것일까 - 김정수

마루안 2018. 6. 5. 22:22



어느 비가 왔다 간 것일까 - 김정수



사직서에 도장을 찍은 오월이었다
유월 하고도 하루가 지난 아침이었다


아내는 말없이 출근하고 아이들은 질문보다는 스스로 질문에 답하는,
눈치가 말짱한


윗집 아랫집 가장들은 다
회의에 빠질 시간이었다
늦은 설거지를 하고 대청소를 하다
배꼼히 문을 열었더니 자동차 한 대만큼
수인(水印)이 찍혀 있었다


누리, 는개, 발비, 보슬비, 부슬비, 실비, 안개비, 이슬비, 작달비, 꿀비, 단비, 목비, 못비, 복비, 약비, 웃비, 해비, 가랑비, 장대비,
장맛비, 채찍비, 개부심, 궂은비, 그믐치, 모우, 소나기, 억수, 억수장마.....


밤새 저 많은 것들 중에
어느 비가
골목을 해고하고 간 것일까
길은, 땅은 또 어떤 소심함으로
열어 보지도 못안 이력을 감추고 있을까


그믐치 같은 도장을 찍은 유월이었다
여우비 같은 유월의 늦은 아침이었다



*시집, 하늘로 가는 혀, 천년의시작








연(緣), 속도에서 틈을 보다 - 김정수



비가 온다고?


자전거 체인을 벗겨 봐 그곳에 너의 슬픔이 감겨 있을지 몰라
동그란 슬픔은 절대
수직으로 떨어지지 않아


돌에도 튀어나온 입이 있어


너무 멀리는 가지도 마 뒤돌아 올 수 없는
속도를 본 적이 있거든


빠른 벽 속에 갇힌 천사는 슬플까?
하얀 날개 한쪽이 지워진


기억은 단절되지 않는 고통을 먹고 살지 더럽혀진 손이 바퀴의 방향을 바꿔 가끔
길을 가두기도 해
시간이 흘러간다고 말하지 마 시간은 슬플 때만 흐르는 척할 뿐이야 의자를 당겨 앉아 봐 뭐가 보여


한데 묶여 있다고 해서 다 밧줄은 아닐 거야
자전거 체인에 묻은 기름을 닦아 보니
손가락이 다섯 개인 이유를 알 것 같더라고


손가락을 펴고 마음을 더렵혀 봐 젖은 땅에 얼굴을 대고 바퀴 자국을 만들어 봐


거울이 달려 있는 벽에서
시간을 만지려고 하지 마 공간의 동공 속으로
빠져들지도 마


너의 눈 속에서 고양이가 튀어나올 것 같아


밥, 밥을
먹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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