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먹이 - 조성국

마루안 2018. 6. 5. 22:55



먹이 - 조성국



폭삭 늙어버린 것 같다

뒤통수 다쳐

죽음의 예행연습 한 번 하고 났더니

온몸이 텅텅 비어 있다

밤낮없이 산책하던

숲길이 내다보이는 거실

쭈그려 앉아 식후 약 먹다

거연히 오래된 수령의 가랑나무 우듬지

새둥지가 달리 보인다

노란 주둥이가 미어져라

벌레를 받아 삼킨 새끼 두서넛

쥐죽은 듯 납작 엎드린 걸

진통제 의지해 대하니

이렇게 다행인가 싶고, 홀몸이 아니라는 것

내 안에 누군가를 키우고 있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앓으면서도 발열하는

이 빌어먹을 생각

먹이 하러 나가봐야겠다!



*시집, 둥근 진동, 애지출판








부도(不渡) - 조성국



근 삼사 년 수소문 끝에 찾아갔다

부드득 이를 갈며 외상미수금을 받으러 간 날이었다

산벚꽃이 한창인 그 집에는

겨울 난로가 그대로였고

허릴 다친 것인지 몸져누운 놈의 똥오줌 기저귀를 갈아주던 여자

마른 젖가슴을 빨던 얘가 참 애처롭게 울어댔다

하염없이 생쌀을 씹어 젖인 양 물리던 쌀뜨물처럼이나

눈썹 하얘지도록 말도 못 꺼냈다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늘어지고 싶었으나 핏발 선 눈알 부릅뜨고

멱살을 움켜쥐고 으름장도 놓고 살살 구슬리며 달래도 보고 싶었으나

문가에 쌀 한가마니만 슬쩍 부려놓고 훌쩍 떠나왔다






# 날기 전까지 어미새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아기새도 입을 크게 벌려야만 살아 남을 수 있다. 우는 얘 젖 준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평화로운 자연 세계에도 입을 벌리지 않으면 죽는 적자생존의 냉정함이 존재한다. 섬뜩하게 공감이 가는 시다. 


밥벌이의 고단함이야 누구나 알고 있을 터, 각종 휴일 꼬박꼬박 쉬고 휴가 및 연월차 챙겨도 따박따박 월급 나오는 공무원 같은 경우 빼고 말이다. 노동 강도에 비해 저임금에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들의 외줄 타는 노동을 누가 알까. 나부터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고 가끔 잊고 산다. 부자는 아니지만 살아 있음이 미안하고 감사한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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