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홀로 마당에서 - 남덕현

마루안 2018. 6. 4. 22:01

 

 

홀로 마당에서 - 남덕현

-K에게

 

 

봄꽃 다 지고 초여름 비

그러나 여름꽃 아직 멀고

봄꽃 그림자마저 지는

슬픔만 남았습니다

 

풀빛 이토록 밝았던지요

달 없이도 환한 마당에서

아는 노래 벌써 다 부르고

이제 모르는 그리운 노래

쓸쓸히 홀로 지어 부릅니다

 

떠나온 사람보다

떠나보낸 이 많다

돌아올 사람보다

떠나갈 이 많다

 

바람에도 내가 두고 온 바람이 있어

유난히 서럽게

머리카락 나부끼며 스쳐 가듯이

나는 당신이 두고 간 사람

 

밤마다 낡은 허공의 탯줄을 끊고

나는 유성인 양 당신의 별자리를

유난히 반짝이며 스쳐 떨어집니다

 

몇 번 울고 웃은 것이 전부인데

벌써 우리가 헤어져

이승과 저승에서 늙습니다

 

하염도 없이 여념도 없이

우리가 따로 늙습니다

 

 

*시집/ 유랑/ 노마드북스

 

 

 

 

 

 

그리움.1 - 남덕현

 

 

마른 노을에 번개 치는 날이면

 

죽어서야 잊겠다더니

살아서 그대를 잊어가는 모욕에

나는 눈앞이 캄캄해지고

 

그리움이 녹슨 바늘처럼 혈관을 타고 돌다

이제 멀건 안개쯤 되는 허전한 몸을 찢으면

한물간 시큼한 내 피가 죄다 저리로 흘러가

마른 노을 서럽게 적시누나

 

무엇이 자라나

이런 그리움이 되랴

 

당신이 내 가슴에 내리 꽂은

번개가 아니고서야

 

무엇이 자라나

이런 그리움이 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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