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조장(潮葬)은 어떨까 - 강형철

마루안 2018. 5. 28. 20:57

 

 

조장(潮葬)은 어떨까 - 강형철

 

 

히말라야 산록에

살고 남은 육신을 토막 쳐

독수리에게 공양하는 천장(天葬)이야 아름답지만

 

뜯고 남은 뼈를 갈아

고명처럼 짬빠를 뿌려 독수리들이 남김없이 먹고 나면

흔들리는 들풀 따라

적셔진 핏방울도 하얗게 마른다지만

 

천장 터에 남은 도끼나 칼이 너무나 섬뜩해

 

아무래도 죽음의 방법으론 좀 거시기해

 

해망동 조금 못 가

죽어 뒤집힌 망둥어가 누워 있는

서해 긴 썰물 뒤 개펄에 알몸으로 엎어져

짱뚱어에게 한 입

병어에게도 한 입

그렇게 뜯겨 사라진다면

 

그래도 남아 개펄에 남은 것이 있다면

흐린 하늘 사이로 간신히 빛나는 햇살에

가끔 옆구리께도 말리면서

발가락 무좀도 삭히면서

슬슬 부는 바람에게 마지막 선처를 부탁해

그냥 젖어 사라질 수 있다면

 

이를 일러

조장(潮葬)이라 부르고

나 그렇게.....

 

 

*시집, 환생, 실천문학사

 

 

 

 

 

 

자전거 도둑 - 강형철


자동차 운전면허증 없다는 것이 실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데
온통 자동차 세상에서는 가난뱅이 전형적인 사례가 되는 것이
가난이 근대화된 한 사례라고 이반 일리치*는 말했지만
나는 그 근대화에는 속하지 않는다며
평생 정지나 취소가 없는 자전거 면허가 있다고 큰소리쳤는데
어느 날 자전거를 알 수 없는 사람이 끌고 가버렸다
면허증 활용도 제고의 측면에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훔쳐갈 수 없는 몸이나 움직여 본다고
헛둘 헛둘 시원찮은 조깅이나 하고 있는데

다리 운전하는 그 면허가 도무지 맘에 안 든다며
자전거의 도움이 아직은 필요한 형편이니
앞으로는 열쇠라도 꼭 잠그고 타라며
어떤 귀인이 자전거를 턱 끌고 왔다

이게 웬 하늘의 은총이냐며 이제는 자전거에 열쇠를 채우고
창고의 문까지 잠가 모셔둔다
나도 자본주의 인간이라며

그러고 나니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전거 도둑님!
나도 간신히 사는 사람이니
자전거는 말 그대로 혼자 굴러가도록 이제 냅두고
경제성장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
얼굴에 난 혹을 병원에 가지 않고 인생 말년 내내 앓다간
사람의 고통에 대해 잠깐 대화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반 일리치,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느린걸음,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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