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심수봉의 눈물 - 김승강

마루안 2018. 5. 28. 20:10



심수봉의 눈물 - 김승강



친구가 죽겠다고 했다
마침 나도 죽고 싶은 터였다
그래 같이 죽자 해놓고
마지막으로 한 잔 하고 죽자고 둘이 동시에 말했다
우리는 허름한 술집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새삼 우정을 느꼈다
그런데 웬 여자가 울고 있지 뭔가
이 판국에 여자의 눈물이라니
돌아다보니 바로 뒤에서 심수봉이 울고 있지 않은가
심수봉은 울면서 노래하고 있었다
사랑밖에 모른다고
눈물이 뺨으로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심수봉은 아랑곳하지 않고 노래했다
손이 닿기라도 했다면 닦아주고 싶었다
친구가 불쑥 선언했다
죽을 수 없다
나는 배신감을 느꼈다
친구가 먼저 일어나 술집을 나갔다
친구가 가든 말든
나는 심수봉이 언제 눈물을 훔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끝내 심수봉은 눈물을 훔치지 않았다
코도 훌쩍하지 않았다
독했다
내가 대신 눈물을 훌쩍 마셨다
독했다
노래가 끝나고
나는 혼자 술집을 나왔다
어쨌든 우리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심수봉의 눈물이 두 사내를 살렸다
친구는 왜 마음을 돌려먹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를 살린 건
심수봉의 눈물이었다



*시집, 어깨 위의 슬픔, 경남








백 년 식당 - 김승강



저 식당을 다시 가려 해
저 식당의 돼지갈비 맛은 유명했지
저 식당에 너를 데리고 가고 싶어
백 년 만이지
맛의 기억은 잔인해
길가의 저 식당은 왜 망하지도 않는지
돼지갈비 맛은 왜 아직도 나를 당기는지
저 갈가 식당의 맛에는 백 년의 슬픔이 있지
네가 모르는 슬픔이
나만 아는 슬픔이
백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슬픔도 맛있게 먹을 수가 있게 되었어
너에게는 슬픔이 없는 돼지갈비가 나오겠지
너는 슬픔이 없는 돼지갈비를 먹어야 해
나는 네가 모르는 슬픈 돼지갈비 맛을 위해 건배하겠지
맛 앞에서는 슬픔도 당할 수가 없어
저 길가 백 년 식당
처녀 무덤 같은;
나는 저 식당의 백 년 전의 맛을 기억하지
슬픔이 없는 백 년 전의 맛
맛이 맛으로만 있던 백 년 전의 맛;
이제 나는
슬픔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었어
저 식당을 다시 가려 해
백 년 만이지